21. 고양이 건축주 미키 이야기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여섯 번째 미팅의 주제는 조명과 콘센트였다. 조명은 집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콘센트의 개수와 위치는 실생활의 편의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요소이지만, 앞선 미팅에서 논의했던 건물의 모양, 공간을 구성하는 평면, 창호 등에 비하면 아무래도 고민할 요소가 많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는 조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건축가에게 조명과 관련해서 딱 하나의 요구사항이 있었다. 바로, 플리커 프리(Flicker-Free) LED 조명을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LED 조명은 초당 100회 정도 깜빡인다. 하지만, 사람은 이런 깜빡임을 느낄 수 없다.


동영상의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동영상은 실제로는 정지 이미지의 연속이다. 보통 초당 24개에서 60개의 이미지가 표시된다. 사람의 뇌는 이를 연속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LED 조명이 내뿜는 빛도 마찬가지이다. 초당 100번의 깜빡임은 100번 빛을 내뿜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순간적인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밝다고 인지한다.


사람인 나나 아내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집의 또 다른 건축주인 고양이 '미키'는 깜빡임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의 눈은 사람보다 또렷이 볼 수는 없지만, 동체 시력과 빛에 대한 민감도는 훨씬 높다. 조명의 깜빡임에 스트레스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앞서 말한 플리커 프리 LED 조명은 깜빡임이 없는 조명이기에 고양이에게 적합하다.


매일매일,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바닥을 뒹굴고 잠을 자고 태평하게 지내는 우리집 고양이 미키 씨를 보고 있노라면, 빛의 움직임에 이렇게 민감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있나. 집사로서 그저 조금이라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무던.PNG 태평해 보여도 고양이라고!
고양이를 키운다면, 플리커 프리 LED

이번에는 조금 번외로 아내와 내가 아닌 세 번째 건축주 고양이 미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미키도 우리가 단독주택을 짓기로 한 이유 중 하나이다.


지금은 8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자랑하는 거대 수컷 고양이로 자라났지만, 미키에게도 귀여운 아깽이 시절이 있었다. 미키의 첫 세상은 경기도 수원의 한 공장이었다. 엄마 고양이는 미키를 포함해 다섯 마리의 아이를 낳았다. 별 탈 없이 길고양이로 자랐다면, 미키의 덩치로 보아 동네의 대장 고양이로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난 공장은 재개발 지역에 속해 있었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처럼 고양이들도 떠나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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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어린 시절 - 돌아보면 이때도 다리가 길쭉한 것이 거묘의 조짐이 보인다.

다행히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좋은 분에 의해 미키 가족은 모두 구조되었다. 사람의 사정에 의해서 고양이 가족은 하나둘씩 흩어져 사람의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형제자매들 중에 가장 겁이 많아서 입양 홍보용 사진에서도 미키는 형제자매들 뒤에 절반쯤 숨어 있었다.


우연찮게 입양 사진을 본 아내는 미키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인연이 닿아서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미키에 대한 입양 신청을 한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당시에 아내와 나는 아주 정중하게 정성껏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냈었다.


입양 홍보를 하셨던 분은 이렇게 예의 넘치는 글을 보낸 입양신청자는 처음이라며, 우리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를 생각해서 미키 대신 아주 예쁜 미키의 자매 고양이를 입양하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미키의 여동생은 사실 정말 미묘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내는 미키가 가장 좋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지지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제일 곱다고 한다.'는 속담처럼 고양이의 객관적 외모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반려묘로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그 고양이가 나에게는 최고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깊어지는 책임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터였다.


미키는 어느새 우리와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마르고 다리가 길던 작은 고양이는 어느새 얼큰한 아재 고양이가 되었다. 어디 내놓아도 한점 부끄럼 없는 아재, 그 자체이다. 미키 자신도 자신의 외모와 행동에 그다지 부끄럼은 없어 보여서 더 재미있다.


현재의 얼큰한 아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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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귀엽고 애교도 많고 살가운 미키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엄청난 수다쟁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다쟁이의 싹이 보이기는 했었다. 우리집에 처음 입양 왔던 날, 아내와 내 손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숨어서 거의 5일 동안 집이 떠나가라 울기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생과 떨어진 것이 무서웠는지 도저히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와 동생들을 찾아 울다가 지쳐서 잠들고, 배고프면 밥과 물을 조금씩 먹는 날의 연속이었다. 이 기간 동안 아내와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새끼 고양이의 울음이 어찌나 우렁찬지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에게 입양을 보낸 분도 걱정이 되었는지 중간에 우리집에 한번 찾아오기도 했었다.


잠을 못 자서 힘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파양을 할 마음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밤에 미키가 울음을 멈추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지쳐서 누워있던 내 몸 위로 올라왔다. 배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슴 쪽으로 올라오는 미키를 마주 보면서 숨이 멎을 듯이 긴장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내 몸을 타고 얼굴 쪽으로 다가오던 아기 고양이가 결국 내 얼굴 앞까지 도달했다. 그때 나는 영화처럼 예쁘게 머리라도 비벼주려나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를 '헤드 번팅'이라고 하는데, 고양이에게는 사실 일반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미키는 나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었다.


내 얼굴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몸을 180도 돌리더니 엉덩이를 내 얼굴에 바싹 가져다 댔다. 정말 몇 센티미터 앞까지 가져다 대더니 내 가슴에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사실, 엉덩이가 문제가 아니라 미키의 조그만 항문이 내 입술 몇 센티 앞에 있었다. 기쁘면서도 황당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그 순간부터 미키는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내와 나를 새로운 동거인으로 인정했다. 고양이가 뒷모습을 허락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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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인사를 즐겨하는 미키씨

그날 이후로 악을 쓰는 듯한 큰 울음이 사라졌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의 미키 씨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고양이가 아니다.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우는 아이이다.


전처럼 무작정 며칠씩 연속으로 울지는 않고, 지금은 하루에 딱 한 번 의지를 담아서 운다. 아침에 아내와 나를 깨워서 습식캔을 먹고 싶을 때이다. 큰 덩치만큼이나 정말 우렁차게 우는데, 다른 집에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아내와 나는 미키의 울음을 들으면 더 이상 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우리집은 알람 시계가 필요 없다. 오전 10시쯤이 되면 미키가 정확하게 우리를 깨우기 때문이다.


미키와 5년간 함께하면서 아직까지 이웃집의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8kg의 미키가 달리고 점프 뛰면서 놀 때와 아침에 울 때는 다른 집에 소음이 될까 걱정하게 된다. 밤늦은 시간에는 아랫집이 울릴까 봐 놀아줄 수도 없고 말이다. 이런 문제는 단독주택에서 살게 되면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아내와 내가 집을 짓기로 결정한 많은 이유들 중에 미키도 조금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금 아내의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고 있는 우리집 고양이 건축주가 우리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모르겠다.


미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줘!


미키_아재_3.PNG 봄날의 햇살을 좋아하는 낭만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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