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작년 말에 집 지을 땅을 샀다. 마흔이 될 때까지 전세 계약은 질리도록 많이 해보았지만, 부동산을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억 단위의 돈으로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요즘은 자동차도 쉽게 1억을 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아파트 주차장만 가도 억을 호가하는 고급 외제차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차는 십 년 가까이 된 국산 준중형차이다.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자동차가 있는 팀원 중에 국산차를 타는 것은 나뿐이었다. 다들 BMW, 벤츠, 테슬라 등 보기만 해도 멋진 차를 탔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도 가끔 만나는 대학 친구들도 거의 모두 외제차를 탄다. 나랑 벌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 맞벌이와 외벌이의 차이인가? 아니면, 하차감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세상에 내가 적응하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아니면 남의 말을 잘 안 드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 들어 보니 조금 더 잘 알게 된다. 나는 확실히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다. 요즘은 부모님이 키우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죄송스럽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지혜가 느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전에 몰랐던 것들을 때때로 깨닫고는 한다. 가끔은 기분 좋은 깨달음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회를 동반하는 가슴 아픈 깨달음이다.
내 생각대로 세상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잘한 일도 하나 있다. 은행에 대출받으러 갈 때마다 권하는 적금 같은 안정적인 금융 상품을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에서 주는 금리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산 감소를 이겨낼 수 없었다. 이자를 받아도 실제로는 돈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을 판단하는 공대생적 사고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취직했을 때부터 얼마 남지 않는 돈을 주식에 모두 투자했다. 때로는 주식을 받기 위해 이직을 했다. 다행히 나의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는 내가 지금 집을 지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억 단위의 돈을 들여서 집 지을 토지를 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겼다.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집으로 우편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집으로 우편을 보냅니다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사정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사면 모든 사람이 열람 가능한 두 가지 문서에 개인정보 일부가 공개된다. 바로,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이다. 토지대장에는 이름만 올라가지만, 등기부등본에는 이름뿐만 아니라 주소까지 공개된다.
나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전세계약 할 때마다 등기부등본을 보기는 했지만, 집주인의 주소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토지를 매매한 후에 집으로 첫 우편이 왔을 때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었다.
해당 우편은 건축사사무소에서 자신들의 사무실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집 지을 생각이라면 자신들에게 상담받아보라는 것이었다. 해당 내용은 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내가 집 지을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라는 물음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토지를 중개한 부동산에서 정보를 제공했나 하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씩 생각을 가다듬으니, 등기부등본이 생각이 났다. 아마, 건축사사무소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먼저 단독주택용지 매매 기록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이 정보는 아파트 매매처럼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최근에 단독주택용지를 매매한 사람은 집 지을 의도로 샀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지번으로 등기부등본을 검색해서 내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을 것이다. 전화번호는 모르니 우편을 보낸 것이고 말이다. 해당 건축사사무소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내 예상대로였다.
등기부등본에 이름과 주소가 공개됩니다
최초의 우편 이후에도 꽤 많은 우편을 받았다. 건축사사무소도 있었지만, 주로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이쪽은 사실 조금 황당한 이유로 연락을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사무소에 토지를 매물로 내놓으면 비싼 값에 팔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토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확인도 안 하고 일단 비싸게 팔고 보라는 내용에 내심 불쾌했다.
나도 정부에서 최초 분양했을 때보다 10% 정도 비싼 가격에 땅을 샀다. 토지 전문 중개업자라는 사람들이 중간에 끼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땅을 보려고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 가격이면 땅주인이 지금까지 낸 대출이자랑 양도세 낼 돈도 안 나와요."
땅주인은 자신이 산 가격보다 비싸게 땅을 내놓았는데, 공인중개사는 매번 이 가격이 싸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대체 왜 저 사람 대출이자랑 양도세를 내줘야 하지라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양도세 절약을 위해서 불법적인 다운계약을 요구하는 땅주인도 있었다.
그런 땅들은 대체로 합법적인 땅보다 저렴했다. 아마 줄어드는 세금만큼 가격이 깎인 것일 터였다. 하지만, 소신껏 세상을 사는 나는 저런 관행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비싼 땅을 샀다. 이전 매매 가격과 땅주인이 지금까지 지불한 대출이자, 취득세, 양도세가 더해진 가격이었다.
내가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받은 우편 중에는 단독주택 가설계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일에 무료가 어디 있을까? 결국은 어디선가 비용을 챙기고 누군가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토지를 살 때부터 세상은 험하고 함정이 많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지만,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