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굿바이, 서울

제주 3주 살기

by 아는언니

여행을 떠나기 직전은 늘 마음이 바쁩니다.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상사와 동료에게 부재 기간 동안 일을 잘 부탁한다는 메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본가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제 집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었을 때. 짐을 싸야 하는데 너무 녹초가 되어 우선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쌉니다.​



입사 13년 차. 한 회 사의 같은 빌딩으로 매일같이 출근했습니다.
종종 운동삼아 걷는 양화대교에서 저 멀리 여의도로 회사 빌딩이 보입니다.
어떤 날의 내 자존감의 근원이 되어주고,
어떤 날은 모든 걸 다 정리하고 떠나고 싶던, 애증의 일터가 보입니다.
화려한 불빛으로 밤을 비추며 쉬지 않고 일할 것 같은 그곳도
이렇게 멀리서 떨어져서 보면 그저 '누군가 야근을 하고 있겠지?'라며 안타까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곳

그곳을 바라봅니다.


3주나 되는 시간을 휴가로 냈습니다. 휴직 한번 한 적 없는 제가 입사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휴가로 내기까지 수없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오롯이 제 자신을 돌보고자 마음을 먹고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습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싼다던 짐이 한가득 찬 큰 캐리어를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러 가는 사람 치고 덕지덕지 속세의 떼를 묻혀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매주 토요일 아침에 진행했던 글쓰기 모임 동료 작가분들과 온라인 미팅을 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설렘과 현실에 두고 가는 일상의 루틴이 무너질까 걱정되는 상반된 마음을 공유합니다. 그녀들에게서 여행 중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받고, 13년간 일한 회사에 쳇바퀴처럼 마음이 묶여 있는 것도 훨훨 털어버리라는 응원을 들으니 진짜 이 휴가가 실감 나기 시작합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미 피곤함을 느낍니다. 인사하느라, 짐 싸느라, 집 청소하느라, 온라인 모임으로 이야기하느라 또 분주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잠시 졸았는데 어느새 공항에 도착합니다. ​


오랜만에 보는 비행기 대기 장면이 이렇게나 생경한 풍경이 된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아껴뒀던 휴식을 취하며 제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진짜 떠날 때입니다.


잠시 굿바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