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혼이지만 가끔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컨설팅 프로그램인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본다. 맘같이 안 되는 부모아 어린 자녀와의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이다. 몇 편 보다 깨달은 것은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의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고 그 감정을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눈에는 '상처 받은 부모'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어른의 마음속에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보이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완벽한 어른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뇌리에 남는 것 중 오윤영 박사의 자녀 '학습교육'에 대한 말이다. 출연한 패널들에게 어린 시절 학업 점수에 대해 기억하냐고 묻는다. 수학 몇 점 맞았는지, 영어를 몇 점 맞았는지 묻는다. 패널들은 답을 하지 못한다. 오윤영 박사는 다시 이어간다. 우리는 시험 점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억한다고 말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의 모습이 생각난다. 어떠했는지. 그녀는 시험을 보기 위해 노력했던 그 과정이 기억에 남고 그렇게 과정을 위해 충실하고 열심이었던 모습이 그의 자아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고 자존감이 된다고 했다.
무수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영어 문법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처음 배우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그런데 또 이것을 잘 모르겠는 것이다. 관계대명사, 지시사, 등등 당시 유명한 <성문 영어> 문법이 잘 들어오지 않아, 좀 해설이 쉬운 문제집을 하나 사서 여름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처밖혀 그 책을 팠었다.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도서관에 들렀다 집에 가는 루틴이었다.
대학교 때 교내 영자신문사 학생기자를 했었다. 학과 수업을 들으며, 학생기자의 일을 해내는 것이 늘 하루를 빡빡하게 했다. 그 와중에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나와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잠깐 씻고 다시 강의실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분명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도서관을 뒷문을 나왔지만, 추억 한편에는 선명한 도서관의 공기와, 그 시간에도 늘 인적이 있던 캠퍼스 곳곳 대학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다시 아주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몇 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겨우 학교를 입학했거나 혹은 더 어렸을 때이다. 부모님께서 훌라후프를 사주셨다. 그냥 재미 삼아했는데, 아빠가 훌라후프 돌리는 나를 참 좋아했다. 어린 딸이 처음으로 무언가 해내는 것이 아빠의 눈에 얼마나 이뻐 보였을까 싶다. 그런데 훌라후프를 처음 산 날, 내가 100개 돌리는 것을 다 채우고서야 마무리하고 잠을 자더란다. 아빠는 그날 너무 기뻐하셨고, 엄마에게 자랑을 하셨다. 그때의 나를 대견해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칭찬이 주는 동기부여와 기쁨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내는 것이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짐작한다.
이번 새벽 글쓰기가 그랬다. 3월부터 언니스클라스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모임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사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은데 혼자서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함께할 크루들을 모은 것이다. 처음에는 하루 한 개 쓴 글을 인증만 했었다. 그런데 여름이 되고 날이 길어지자, 이 긴 해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 6시부터 30분간 글쓰기 모임으로 방향을 바꾸고 두 달째 진행해보았다.
매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을 가끔은 괴로운 일이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키보드를 열어 귀신같은 초췌한 몰골로 자판을 두드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빠지지 않고 새벽 글쓰기로 하루를 열기 위한 노력을 하나의 루틴으로 만들었다. 그 전날 11시에는 적어도 잠들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쓸데없이 유투부를 보다 자정 넘어 잠들지 않도록 나를 바꾸어갔다.
처음에는 새벽 30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30분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그런데 1달이 지났을 때, 아니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일주일을 시행했을 때, 이 새벽 글쓰기의 문을 열기 위해 신경 쓰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약속한 시간을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함께한 크루들과 온라인 줌 미팅을 통해 소감을 나누었을 때의 뿌듯함을 기억한다.
어른이 된 우리들은 무언가 나는 토닥여주는 동기부여 없이 외부의 사건에 의해 의욕을 잃고 혹은 상처 받는다. 그런데 새벽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의 성취감이란 열매를 먹고 자라나는 것이다. 오윤영 박사의 말씀처럼 점수보다 그 과정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어른이'들은 매일매일 살아갈 힘을 이 모임을 통해 얻었다.
그 기쁨과 성취감을 얻어본 멤버들과 8월 28일 토요일 온라인 미팅에서 만나 그간의 소회를 나누고 서로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온라인 수다 미팅이 '대단한 의식'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꽤나 반갑고 에너지틱한 무언가가 된다. 8월을 마무리하는 온라인 모임도 그래서 참 좋았다.
특히나 나는 이번 8월에 개인적으로 준비한 시험이 있어, 새벽마다 글을 쓰는 것, 온라인 미팅을 위해 토요일 아침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꽤 버겁게도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니 하루 24시간 중에 온전히 글을 쓰는 나로 보낸 30분은 내 인생의 자신감을 더욱 튼튼하게 해 준 토양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해준 멤버들은 정말 소중한 '친구'로 느껴진다. 코로나 시대로 집에 갇히면서 시작한 온라인 활동이었는데, 이 시간을 아주 값지게 보내고 있다. 나라는 '어른이'는 오늘도 매일의 과정을 만들어간다. 오늘 아침도 함께해준 크루들이 괜스레 아주 정겨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