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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Sep 24. 2021

코시국 추석명절은 간소하게

코시국 종갓집의 추석 명절 나기 소설 (1)

종갓집 장손인 동일 아자씨는 도무지 명절 때마다 그의 와이프가 힘든 것을 모른다. 본인은 말만 하면 부하직원들이 뭐든 다 해주는 군인 간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대한 체감과 이해가 낮다. 무엇이든 자신을 중심으로,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온 탓이다.

 

40년이 다되도록 종갓집 며느리로 일 년에 십 수 번을 제자를 지내며 살아온 영숙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제사를 최대한 줄여가기로 한다. 하지만 영숙의 딸 혜정이 보기에는 차례 음식의 양이 1/3로 줄었을 뿐이지 종류는 도무지 줄지 않는다. 딸들의 걱정 섞인 잔소리에 영숙은 종류도 줄였다 하지만, 준비해야 할 음식의 종류가 줄지 않는다면 일의 공수는 매 한 가지다. 그나마 올해는 코로나로 작은집 식구들이 종갓집으로 모여들지 않아 손님이 줄었을 뿐, 간소해진 차례상이라 해도 영숙의 딸 혜정이 보기에 종갓집 맏며느리의 일은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동일과 영숙의 큰 딸, 혜정이 사회생활을 한 이후로, 여자도 돈을 벌고 버젓이 대기업에서 제 몫을 하는 신녀성이 되면서 명절이 되면 기운이 팽팽해진다. 종갓집은 눈에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찌릿찌릿하다. 혜정의 눈에 남자들은 일은 하나도 않고, 자기 와이프들을 팽팽 부려먹는 것으로만 보이는 차례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그녀의 아버지이자 종갓집 장손인 동일을 은근히 압박하기 때문이다. 딸의 눈치를 보랴, 와이프 눈치를 보랴, 동생들 앞에서 큰형으로서의 위신을 세우랴, 동일은 종갓집 장손 노릇 하기가 가시방석이다.


코로나로 가족들도 모이기 힘든 상황이라, 올해 추석은 동일의 가족들끼리 모여서 간소하게 지내기로 한다. 결혼을 안 한 큰딸인 혜정과 시집갔으나 남편이 해외 발령으로 혼자 서울에 있기 된 작은딸 은주가 이번에도 엄마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차례 준비를 할 것이 안타까워 추석 연휴에 본가로 향한다.


다른 집은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이다 국내 리조트행이다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하고,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배달음식으로 차례상을 대신한다는 뉴스가 종종 나기도 하지만, 혜정의 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몇 년 전만 해도 치기 어린 마음에 혜정은 동일에게 큰소리를 내어 시대가 변했다고 의견을 피력해보기도 했지만, 대단한 종손의 고집을 꺾기는 불가능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다만 영숙이 덜 힘들도록 돕는다. 작은엄마들도 오지 못하는 때에는 딸이 나서야 할 차례이다.


코로나가 이전에는 30살 넘어 시집을 안 간 혜정은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쓸데 없이 말이 많아지는 이 시기를 피해 인생을 즐겼었다. 그러나 올해 추석은 진정 영숙을 도와야 할 때임을 알고 작심하고 차례상 준비를 돕는다. 또한 집 밖에서 놀만큼 놀아서, 스위트홈에서 엄마 밥 먹고 쉬는 게 제일 편한 것 또한 안다.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니 집안일도 좀 할 줄 알아, 영숙은 혜정이 전과 달리 일손에 보탬이 좀 된다고 말한다.

 

은퇴한 동일은 '가부장주의의 살아있는 화석' '21세기의 살아있는 공자님'이다. 하지만 은퇴한 이후에는 친구고 친척이고 다 필요 없고 와이프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딸들에게 누누이 들으며,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영숙의 집안일을 돕는 레벨이 높아졌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음식 쓰레기 버리기, 청소기 돌리기, 물걸레질 등은 시키지 않아도 척척이다. 이번 추석에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영숙, 혜정, 은정은 전을 부친다. 온갖 친척들을 다 먹일 대량생산이 아니라, 딱 자신의 가족만 먹을 전을 부친다고 하니 전에 없이 의욕이 넘친다. 새우전, 육전 등 재료 준비도 더 신경 쓴 영숙의 정성이 느껴진다. 실제로 본인이 먹을 음식이라 재미 삼아 부지런히 전을 부친다.


동일에게 청소 등의 일은 자발적으로 해도, 요리는 범접할 수 없는 분야다. 부지런하여 움직임이 많은 동일은 전 부치느라 밤 9시가 되도록 식사도 하지 않고 바쁜 딸 둘과 와이프를 보는 것은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배가 고픈데 저녁 식사를 차려주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금 저녁도 안 먹고 뭐하는 짓이야!" 버럭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순간 아뿔싸 했지만, 이미 동일을 보는 세 여자의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 부치는 것을 마무리한 혜정의 주도로 늦은 저녁식사상이 차려진다. 혜정이 오가며 수저를 놓고 반찬을 가져다 올린다. 막 부친 전도 한 접시 담아낸다. 테이블 위는 점점 가득 차지만, 동시에 식기를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는 점점 거칠어진다. 동일은 미동 없이 탁자에서 상이 차려지길 기다렸다 허겁지겁 식사를 먼저 시작한다. 식사 위에 대화는 없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내고도 부엌에서는 영숙은 아직 할 일이 많다. 어느샌가 동일은 안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든다. 혜정과 은정은 오랜만의 본가에서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떤 이불을 덮어야 하는지 영숙에게 물어 잠을 청한다. 모두가 잠이 들도록 영숙은 부엌에서 달그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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