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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Sep 24. 2021

K-종손 vs. K-장녀

코시국 종갓집의 추석 명절 나기 소설(2)


추석 아침 7시쯤이 되었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종갓집 맏며느리 영숙은 누구보다 늦게 잠들지만, 제일 먼저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인다. K-장녀 혜정은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간다. 영숙을 도와 상차림을 준비한다. 30여 년 인생 영숙의 차례/제사상 차림을 보아왔기 때문에 익숙하다. 어제 부친 전과 산적 그녀가 잠자리에 들도록 영숙이 만들었을 삼색 나물. K-종손 지우가 도와 전날 깨끗이 씻어둔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기 적절하게 끝만 다듬어 깎는다. 동일이 전날 다듬은 밤과 대추를 놓고 한과와 약과는 봉지를 뜯어 담는다. 삶은 계란을 까는데, 삶은 때 깨진 달걀은 차례상에 올리지 못해 분리해두고, 꽃 모양을 내서 자를지 그냥 한칼에 반듯이 자를지를 영숙에게 묻는다. 영숙은 본인은 아무렇게나 한다 하지만, 혜정의 눈에 그녀는 완벽주의자다. 무엇하나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본인이 해야 하는 성미라, 하얀 코닝 그릇에 음식을 옮겨 닮으면서도 하나하나 영숙에게 확인을 한다. 혜정의 마음대로 했다가는 일을 하고도 영숙에게 욕한 바가지 얻어먹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거치는 프로세스다.


식탁에서 준비된 접시를 차례상으로 옮겨가는 것은 그나마 지우의 몫이다. 그것마저 혜정은 느릿느릿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제사장 동일은 거실의 차례상을 총괄하시느라 전달되는 접시를 상에 순서에 맞게 놓으신다. 혜정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 물김치를 빈 곳에 놓으며 홍동백서가 아니냐고 동일에게 확인을 한다. 동일은 같은 종류의 제사음식이면 그 위치를 따지나, 같은 종류가 아니라면 상관없다며 그 자리에 두어도 된다고 한다. 뺀질대는 혜정의 모습만 봐왔던 은정은 언니가 웬일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나 싶어 용하다면서도 '홍동백서?'라며 아는 척을 하는 언니가 은근히 웃긴다.     


9분의 조상을 위해 상에 밥, 국, 술이 제기에 담겨 빈틈없이 제사상을 채운다. 차례가 시작된다. 코로나 전 같으면 종손과 그의 형제들이 차례상 앞에 서고, 그 자식들은 옆자리에 서서 절은 한다. 어렸을 때부터 혜정과 은정은 남자들과 어울려 절을 하며 차례를 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며느리들은 부엌에서 대기를 하고, 그나마 딸들은 남자들과 어울려 절은 하는 이 상황이 어색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OB 종손 동일과 YB 종손 지우가 추석날 아침 제사장이 된다. 대학을 막 졸업하여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가느라 막둥이 종손 지우는 바빴다. 주로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기에 막둥이가 안쓰러운 것을 알기에 이해하려 하지만 이 모든 차례 준비 과정에서 그의 노동력은 과연 몇 프로나 될까?라는 생각이 잠시 혜정의 뇌리를 스친다.


혜정은 절을 하며 이 모든 생각들을 잊고 조상님께 가정의 평안을 빌고 맛있게 드시라는데 집중하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차례를 마치고 동일, 영숙, 혜정, 은정, 지우는 다 같이 식사를 한다. 혜정은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또박또박 말한다. 차례 지내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으나, 음식의 종류와 양을 더욱더 줄이시라고. 동일은 본인의 세대에서는 이렇게 진행할 테니 너희들은 상관 말아라 한다. 혜정은 다시 최대한 상관 안 하려고 하나 '내 엄마'가 힘든 것은 보기 힘들어 본인이 일을 하다 보니 민족 대명절 추석이 전혀 즐겁지 않고 지긋지긋하다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동일은 이 모든 게 종손의 역할이고 이번에야 혜정과 은정이 많이 도왔지만, 평소와 미래에는 작은 엄마들이 도우니 이 의식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아빠의 가장 가까운 부인 영숙과 딸 혜정과 은정이 힘들다는데, 먼 친척이 모이고 먼 친척들이 화합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혜정도 지지 않고 이야기한다. 대체 누구를 위해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다 울컥한다. '할많하않'인지 과묵한 지우는 말이 없다. 최대한 감정을 누른다고 누르고 그저 논리적으로만 말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혜정은 결국 눈물 한방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동일의 마음이 다친 게 보인다. 이 논쟁 정말 지긋지긋하다.


차려진 진수성찬이 무색하다. 영숙은 다들 조용히 하라고 늘 그렇듯 대화를 막는다. 은정은 회피하지만 말고 이야기를 해서 조율해가자고 말한다. 오래 반복된 주제이기에 그나마 감정이 쉽게 잦아지고 식사를 한다. 전이 맛있다고 한다. 산적은 돼지고기 소고기 둘 다 할 필요는 없냐고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말한다. 동일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은정은 혜정에게 말한다. 말 안 하고 쌓아두느니 말하고 털어버리는 게 좋아. 혜정은 어두운 동일의 표정이 신경 쓰이지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혜정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선뜻하지 못한 말을 꺼낸다. "영숙 씨, 식기 세척기, 냉장고, 올레드 티브이 중 바꾸고 싶은 거 하나 골라. 딸이 전자 회사 다니는 동안 뭐 하나 버젓이 해준 것도 없고 해서 이번에 내가 사줄게. 냉장고 보니 많이 낡은 것 같더라. 그리고 우리 집 다 도자기로 한정식집처럼 식사하는 거 정성스럽고 좋지만, 설거지 하기 노동이야. 식기 세척기가 그렇게 편하데. 그거 하나 들여놓고 부엌에 있는 시간 좀 줄이던지. 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정해서 알려줘." 은정은 옆에서 언니를 눈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 얼마나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야? 라며 인터넷으로 가격을 대충 보여준다. 4자로 시작한다. 혜정은 말한다. "영숙 씨 또 최고급 아니면 안 쓰잖아. 쓰고 싶은 거 사야지. 그 비스포크나 오브제 그런 거 한번 봐봐. 너무 비싸면 반반씩 내던지..." 말끝을 흐린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이며 약과며 야무지게 먹는다. 상을 다 치우고 혜정은 재빠르게 앞치마를 매고 설거지 자리를 차지한다. 오랜 경험으로 한자리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숙의 지휘 아래 은정은 모든 음식들을 정리한다. 동일은 거실에 지우는 제방으로 들어간다. 설거지와 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한숨씩 낮잠이 들어버린다. 며칠간의 노동이 고된 것인지 마음의 응어리들이 밖에 나오는 과정이 피곤했는지 낮잠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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