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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Sep 24. 2021

추석 노동을 보상할 5성급 호텔 에프터눈 티세트

코시국 종갓집의 추석 명절 나기 소설(3)


추석 전부터 혜정과 은정은 말했다. 추석날 차례가 끝나면 동일은 어디로 외출하여 가족들과 바람 쐬고 싶어 하고, 영숙도 차례 음식 아닌 거, 남이 차려주는 음식 좀 먹게 해 드리게 어디 근사한 데를 찾아보자고.


은정과 그녀의 남편은 사내커플로 결혼했고 현재 남편은 해외로 발령이 나 코시국에 홀로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에서 외국인 사무직 노동자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코시국에 비자발급이 어려워 생이별을 하게 된 은정은 시댁에 가서도 빡세게 일하지 않는데, 친정만 오면 피곤하다고 한다. 영숙이 시키는 일이 많아서 친정에 잘 오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동일은 추석 전날 은정의 꿀물, 정우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타지에서 와이프 없이 혼자 외롭게 보낼 정우가 너무 안쓰럽다. 무엇보다 이런 명절이 되면 찾아와 살갑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말이 통하는 술친구가 없어 적지않이 그가 그립다.


사실 혜정은 30 하고도 N 년을 지내는 동안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즐기느라 바빴다. 영숙의 60 하고도 N번째 생일날 은정은 영숙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부엌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미역국과 전복밥, 도미밥을 손수 해드렸다. 집에서 준비한 식재료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본가에서 실력을 펼쳐 보였다. 사모님으로 온갖 좋은 산해진미를 먹어본 영숙도 생전 처음 도미밥을 먹은 것보다, 시집간 둘째 딸 은정의 생일상을 받아본 것이 말로 다 못할 감동이었다.


혜정은 그 모습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30N년차 혜정은 독립하고도 주말이면 엄마 밥이 먹고 싶다며 본가로 달려왔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혜정을 바라보던 동일의 말투와 눈빛이 전과 달라졌던 것, 사위 정우를 향한 영숙의 무한 애정이 서운하기만 했던 혜정은 본인의 포지션을 정확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철분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겠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혜정과 은정은 신라호텔 뷔페가 뭐니 뭐니 해도 최고라고 이야기하지만 에이치 카드가 있어야 할인되니 이번엔 글렀다고 대체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의 잦은 해외출장으로 쌓은 포인트로 서울 내 근사한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하지만 영숙은 보통이 아니다. 웬만한 호텔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왕 갈 것이면 할인받아 가는 곳보다 제값 주고 제일 좋은 곳에 가자고 한다. 그리하여 영숙, 혜정, 은정은 여의도의 새로 생긴 5성급 호텔 페어몬트의 에프터눈 티세트를 즐겨보기로 한다. 가격은 인당 다섯 장이라고 한다. 동일에게 함께하자고 하니, 여의도는 정치인들이 많아서 발 들이기도 싫다고 한다. 그러지 말고 인근으로 드라이브 가서 칼국수 한 그릇 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혜정과 은정은 영숙이 원한다고 하며, 해외여행도 못 가는 마당에 인당 다섯 장 정도는 갓심비를 충족시켜주니 돈 걱정하지 말고 해 보자고 강행하여 예약까지 한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은 은정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축 가라앉는다. 오 년 넘게 키워온 반려묘, 남편과 함께 해외생활을 하게 될 줄 알고 시부모님 댁에 탁묘 했는데, 그 자식 같은 고양이가 혈뇨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은정은 고양이가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급히 병원을 가게 된다.


모처럼 계획했던 오성급 호텔 에프터눈 티세트를 즐길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동일, 영숙, 혜정 셋이 근처 양평 두물머리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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