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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Sep 24. 2021

21세기 살아 숨 쉬는 공자님과의 대화

코시국 종갓집의 추석 명절 나기 소설(4)

양평으로 드라이브 가는 길에 동일은 신이 난다. 집에 있는 것은 도무지 좀이 쑤신다. 늘 밖으로 온갖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게 체질에 맞다. 추석 전에도 추석에도 잔소리를 해대는 마누라와 딸이 못마땅한 건 사실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도무지 그녀들의 말을 인정하기는 싫다. '오늘 점심메뉴도 내가 정했고 내가 쏜다.' 추석 음식을 몇 끼 내리 먹어서 좀 지겨웠는데 매콤한 문어 볶음이다. 고생한 아내도 딸도 내 넓은 마음을 좀 알아야 할 텐데 서운하다. 몸과 마음이 다 피곤했는지 추석 전 고향으로 성묘를 운전해서 다녀와서 그런지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딸년이라는 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지만, 지가 속이 있었으면 이런 거 걱정할게 아니라 시집이나 빨리 갔으면 좋겠다. 며칠 좀 쉬면 자연스레 나을 텐데 자꾸 귀찮고 (무섭게) 안과를 가보라고 권한다. 어이구... 속없는 년... 하면서도 역시 문어 볶음은 몸보신에 좋다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배고픈걸 못 참는 동일은 영숙과 혜정과는 늘 밥 먹는 속도가 다르다. 식사 후 양평 두물머리를 지나 풍경 좋은 카페로 드라이브를 한다. 연휴 끝이라 사람이 많긴 하지만 자연 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이 모처럼의 여유로 다가온다. 커피 한잔 하고 동일이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여 혜정은 살짝 제사 준비를 더욱 최소화하고, 가족끼리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집으로 온다고 말을 꺼낸다. 동일은 듣기가 싫어 자리를 떠나 산책로로 혼자 가버린다.


동일이 자리를 비우자, 그제야 영숙은 혜정에게 나직이 이야기한다. 이번 코로나도 시골에서 성묘한 것으로 차례를 대체하면 되는데 굳이 서울에서 차례상까지 올렸다고. 시골 작은 엄마가 그냥 본인들이 성묘 가서 제사 지내면 되는데, 성묘도 하고 큰댁에서 또 차례를 지내서 형님 혼자 번거로워서 어쩌냐며 안부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하아... 그런 속사정이... 듣는 혜정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유교계의 암모나이트 화석', '21세기 살아 숨 쉬는 공자님'이라며 가부장제와 유교의 인습에 대한 뒷말을 한다. 영숙은 작은 아버지 식구들도 자식들 다 결혼해 분가해서 손주 손녀 있으니 그들끼리 명절을 보내고 싶지 굳이 큰집에 오고 싶냐는 것이다. 자식 나이 들면 독립시키듯, 각자의 가정이 견고해지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본인만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 형제를 감싸고 도니 그 고집이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혜정은 구구절절 영숙의 말이 맞다고 맞장구친다. 이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맞장구다.


동일은 산책로를 걷다 혜정에게 전화를 건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을 나누고 싶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만나면 맞는 소리만 해대는 딸이 미우면서도 늘 그립다. 혜정은 투자용 오피스텔을 알아보느라 부동산과 전화를 한다고 좀 늦게 온다고 한다. 동일은 딸년이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헛똑똑이 짓만 한다고 생각한다.


혜정은 진짜 중요한 현실이 뭔지도 모르고 이상과 도리만 내세우는 동일의 똥고집이 지겹다. 결혼도  하고, 대기업이라 하지만 회사에서의 여성인력으로서의 입지는 좁고,  나이 먹기 전에  집은 있어야겠는데 부동산은 도통 모르겠어 쉬는 날에 부동산이라도 다녀보고 싶은데, 동일 상한 기분도 풀어줘야 하니 시간은 함께 보내야겠고...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부동산에 가있다.


식사하고 카페도 갔으면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건만 동일과 영숙은 오랜만에 바람 쐬는 게 좋다며 이곳저곳 더 가본다. 혜정은 체력이 이미 방전되어 이곳저곳 끌려다닌다. 운전대를 잡은 동일은 요즘 넷플릭스라는 게 그렇게 좋냐 물어보며 <오징어 게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혜정은 넷플릭스를 월정액으로 이미 보고 있는데 동일과 영숙을 자신의 계정으로 붙여 함께 보면 되니 계정을 공유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를 않는다. 동일과 영숙에게 일일이 넷플릭스 앱을 핸드폰에 깔아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이다. 어릴 때 부모가 자신을 키울 때, 수천번 반복하여 말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던 생각을 하지 못하고,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동일과 영숙에게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 사실은 귀찮다.


저녁으로 양평의 유명한 팥죽까지 먹고서야 집으로 향한다. 혜정은 집에 가서 빨리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동일이 10시쯤에 넷플릭스로 오징어 게임을 보자고 한다. 혜정은 그러자고 대답은 씩씩하게 하고, 차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서점으로 줄행랑쳐 부동산 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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