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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Oct 25. 2020

관심도 없으면서 내향수 따위 맞추지 마세요.

소개팅남에게 보내는 경고장

일주일 내내 사로잡힌 생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만남을 한 후 매일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소개팅남이 있었는데 두 번째 만난 이후 연락이 뚝 끊어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만남 이후에도 연락은 했는데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 같은 관심을 꼭 잠겄습니다. 저의 향수 브랜드와 종류까지 정확하게 집어 말하길래... 맥주와 와인과 또다시 맥주에 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서 잘될 줄 알았나 봅니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이 소개팅이 아무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테니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된다고, 결혼 같은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이전 남자 친구 때문에 맘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압박으로 참지 말고, 그냥 안 맞으면 혼자 잘 지내도 된다'는 생각 같은 건 그냥 나를 속이기 위한 스스로의 위로일 뿐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더 늦기 전에 이번에는 이 사람과 잘됐으면 하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느라 온신경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연락이 없으면 짜증 나고, '무엇을 잘못했지? 무슨 말이 거슬렸을까?'를 복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저는 이 썸을 마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애쓰지 말자' 절대 연애에, 결혼에 목매달고 애쓰지 말자.

안 마시던 술을 마셨습니다. 연애를 해야 하니 술을 마셨고, 연애가 잘 안되니 술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남은 것은 숙취뿐. 무작정 걸었습니다. 홍대에서 합정을 지나 당산을 지나 영등포 구청까지 양화대교를 넘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최고의 휴식>을 읽다 보니 저의 걷기가 동작 명상 중 하나인 걷기 명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상념으로 저의 뇌를 지치게 하고 있었던 것도 깨달았습니다. 잡념으로 쉼 없이 뇌를 피곤하게 했기에 일주일이 끝난 금요일 오후에는 두통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생각에서 벋어 나기 위해 필라테스도 하고 춤도 추었습니다. 결국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습니다.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법

1) 온-오프 전환 의식을 갖는다
    : 특정 음악을 듣거나 샤워를 하는 등. 뇌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 일 모드와 휴식 모드를 명확히 한다.
2) 자연을 접한다
    : 인간을 초월한 스케일의 비인 공물(자연)을 접하는 것으로 일상과 일의 모드에서 벗어난다.
3)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한다.
     : 아름답다는 감각은 뇌의 보수계, 배외측 전두전야 등에 작용한다.
4) 몰두할 수 있는 것을 갖는다.
     :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보수계가 자극받는다.
5) 고향을 찾는다.
    : 성장한 장소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안정감은 불안의 반대다.

<최고의 휴식> 140p


평소 같지 않게 술을 마신 금요일 밤에 택시를 타고 엄마가 계시는 집으로 갔습니다. 저의 집이 훨씬 가깝지만 혼자 일어난 토요일 오전이 지독하게 외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야간 할증이 붙었지만 엄마에게 향했습니다. 역시 주무시고 있던 엄마가 놀라서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 했지만 저는 그저 씻고 푹 잠들었고, 다음날 일어난 침대가 매우 푹신하고 침구류가 주는 따뜻함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침대에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 침대에서 자면서 수없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밀려옵니다. 몸이 아파서 울었고, 마음이 아파서 울었고, 잠이 오지 않는 밤 수없이 잠을 청하며 뒤척였던 그 침대가 오늘은 큰 마음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엄마와 따뜻한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아무 말도 자세히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왜 그 늦은 시간에 왔냐고 다시물 어보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다고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술 마시고 놀다가 집에 가기 싫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5가지 방법을 이미 저는 적절하게 생활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책의 주인공 나쓰는 쓰러져가는 레스토랑을 일으키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멤버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채로 불편한 시간들을 보냅니다. 자신의 방법을 따라달라고 부탁하고 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에 집중하는 명상법을 시도하고, 식당 한편의 공간에서 명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처음엔 누구도 명상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호기심에 한 명이 명상을 참여해보고 집중력 향상에 효과를 봅니다. 갈등을 빚었던 동료와는 하나둘씩 소통합니다. 그를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요. 책 속의 그도 삶 속의 나도 인생의 고군분투를 하느라 머리 아픈 생각을 하니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눈물이 또르르 자꾸 흘렀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 오고 또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길 갈망하는 가을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오로지 나에게 비롯되고 누구도 나의 평화를 방해할 수 없으니, 힘들면 울고 이야기하고 글 쓰고 술 마시고 그렇게 나를 달래고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걷기가 명상의 한 종류라면 저는 오늘도 무작정 걷고 또 걸을 생각입니다. 아무 생각이 안 드는 뇌의 편안한 휴식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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