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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yoo Feb 01. 2024

어젯밤 젤리가 제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젤리가 지금 제 곁에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늘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함께 건강하게 산책했던 아이의 심장이 멈추던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복잡한 심정으로 저에게도 멈춰버린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 품 안에서 잠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삶이 얼마나 예측불가능하며, 고통의 연속인지, 나이 든다는 사실이, 이런 경험들이 쌓인다는 사실이 무겁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인생의 무게감이라라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의 반복인지 자꾸 느껴가는 나 자신이 안쓰럽습니다.  


젤리는 이식증이 있습니다. 늘 여기저기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마도 유기견 시절 혼자 돌아다니며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 생긴 습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감자전을 부쳐먹으려 감자를 깎다, 감자에서 도려낸 감자싹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젤리를 안고 냅다 달린 것이 첫 기억입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토하는 주사를 맞고 젤리 위에서 나온 감자싹을 확인하고 돌아오던 날, 젤리에게 화도 냈었답니다. 그때는 어쩌다 한 실수인 줄 알았지만, 젤리에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을 반복하자,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일단 가능한 젤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내놓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하고, 가능한 젤리에게 먹는 것을 제한하지 않고 다양하게 먹게 해 주었지만, 사건은 반복되었습니다. 


가끔 뭔가를 잘못 먹고 배가 아파한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저 꼭 안아주곤 했는데, 다행히 금세 또 괜찮아졌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가을, 젤리가 심한 발작을 했습니다. 거품을 물고 눈이 돌아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다행히 근처 동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하고, 산소치료와 수액을 맞고 건강하게 또 돌아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뇌수막염이 의심되니 MRI를 찍어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심한 발작이 생기면 발작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고 해서, 다시 발작이 생기면 MRI를 찍겠다고 결심도 했고요. 하지만, 며칠 뒤 젤리의 똥에서 은행을 발견하고 이 녀석이 은행을 먹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확신했습니다. 다행히도 어젯밤까지 젤리는 어떤 발작도 없이 건강히 잘 지내주었습니다. 다만 또 뭔가를 잘 못 먹어, 토하는 주사를 맞는 일은 몇 번 있었답니다. 저 혼자 지낼 때는 저만 젤리를 잘 챙기면 되지만, 부모님 댁인 부산집은 층이 나뉘어 있어, 젤리가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제가 챙기기 힘들었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젤리를 미국에 데려갈 준비 하다, 포기했어요. 제가 어떤 상황일지 모르니, 가까운 동물병원이 있는 한국 부모님 댁이 젤리에게 더 안전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젯밤 8시 30분경 젤리가 통증을 호소하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는 병원은 모두 진료를 마감한 상태라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갔습니다. 사실 두 군데를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을 갔는데, 다른 병원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듭니다. 젤리의 발작을 멈추기 위해 진정제 주사를 맞힌 후 응급의료진은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며, 혈액검사 후 뇌압을 낮추는 주사를 맞히겠다고 하셨습니다. 뇌압을 낮추는 주사는 이뇨제입입니다. 그리고는 반응이 어떤지 보시겠답니다. 뭔가를 잘 못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제 말은 듣지 않으시는 눈치였습니다. 엑스레이만 먼저 빨리 찍어봐 달라고 사정해보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가 됩니다. 뭔가를 잘못 먹은 것이 맞다면, 이뇨제가 치명적일 수 있는데... 저는 패닉이 왔습니다. MRI를 찍지 않으면 뇌수막염을 정확이 진단할 수 없는데, 갑자기 뇌수막염 치료를 하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진정제를 맞은 젤리는 힘없는 다리로 죽을 곳을 찾듯 구석을 찾았고, 젤리가 병원에서 혼자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함께 있겠다고 결심을 했고 허락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젤리는 체온이 떨어지고 있었고, 사경을 헤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그냥 다른 곳으로 전원 하시라는 의료진의 표정에서 이 분은 젤리를 살릴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판단이 썼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렇게 진료비를 결제하고 젤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 12시경 집에 도착한 젤리는 배가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젤리를 안고 더 아파하지 않고 하나님 품으로 데려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진통제라도 먹여야겠다는 마음에, 젤리를 잠시 어머니 품에 맡겼는데, 어머니께서 "젤리야 숨 셔"하셨습니다. 그 순간 젤리의 심장도 멈춰버렸습니다. 어쩌면 제 품에 더 있고 싶어서 젤리가 고통을 더 참아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에 있었으면 덜 고통받고 좀 더 일찍 천국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젤리가 제 품에서 떠나 주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늘 젤리의 마지막은 제 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 친구가 죽은 반려묘를 이틀간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을 때, 사실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 일이 되니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젤리를 안아주었습니다.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아직 따뜻했고 죽음이 실감이 안 났거든요. 그냥 이대로 언제 까지든 같이 있고 싶었어요. 2015년에 생명공감에서 젤리를 입양했으니, 8년 정도 우리가 함께 했네요. 워낙에 작은 아이라 처음 입양한 그날부터 매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났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젤리를 안고 배를 쓰다듬어주는 일이었어요. 젤리에게도 익숙한 일상이 되었는지, 일어나면 저에게 먼저 다가와 안기곤 했답니다. 


전날 밤 예쁜 바다 꿈을 꾸었는데, 아무래도 젤리가 천국으로 갈 꿈이었나 봐요. 제가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 주려,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산책도 자주 다니고, 여기저기 좋은 곳에도 함께 다니고, 젤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뭐든 챙겨주려 했고요. 매일매일 내 손으로 만들어서 먹이고, 건강식도 잘 챙겨주었어요. 오늘 같은 날이 오면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했다고 당당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스스로 당당하기보다 아쉬움이 더 큽니다. 젤리와 나는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서도 함께 살았고, 부산에서도 함께 살았어요. 제주도의 좋은 곳을 늘 함께 다녔고, 바다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꿈을 꾸었나 봅니다. 이제 미국에 데려가, 그곳의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집 앞 공원을 함께 산책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힘들게 되었네요. 그래도 천국에서 잘 지내다, 나중에 나를 마중 나와 줄거라 생각해요. 


젤리는 이따 옥상 화분에 묻어줄 생각입니다. 납골당도 알아보았지만, 아버지 농장에 작은 묘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우리 가족 모두와 젤리를 위해서... 다만,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은 우리 집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옥상 화분에 묘를 만들어주고, 나중에 제가 미국 가기 전에 농장으로 옮겨 주려고요. 지금 농장에  묻어두고 돌아오면, 젤리가 혼자 너무 무섭고 외로울 것 같아 제 마음이 너무 힘들 거 같아요. 그래도 우리 집에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이렇게 뭔가 써놓고 나니, 숨이 쉬어집니다. 

젤리는 너무 이뻐서, 이렇게 이쁜 아이는 제 인생에서 유일할 것 같아요. 그런 아이를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젤리야.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했어. 너는 그냥 천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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