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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Jan 19. 2018

스위스 새댁의 '색다른' 1년 계획 들어볼래?

새해맞이 잔치는 끝났다. 벌써 2018년의 첫 달도 중반이 넘어가고 관공서에서나 개인적인 기록을 작성할 때 새 연도를 쓰는 것에도 익숙해지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유럽의 전형적인 겨울을 본격적으로 나야 한다. 달력을 넘기면서 1년간 아이들과 무엇을 할지 계획을 한 번 세워본다.


①2월 바즐러 파스나흐트(Basler Fasnacht)와 스키 방학

2월의 바즐러 파스나흐트(Basler Fasnacht)는 유럽의 주요한 볼거리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뉴스 후 나오는 '지구촌 영상'에 제법 단골로 방영되는 것 같다. 이 기간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와 전화하면 늘 "지금 하는 바젤 축제 너도 구경 가봤니?"로 운을 떼신다.


사순절 시작 후 다음 월요일부터 사흘간 축제가 열리는데 기본은 이렇다. 전통적인 옷을 입고 커다란 탈을 쓴 다음에 북을 치거나 피콜로를 불며 행진한다. 그 원형을 토대로 축제용 랜턴 전시, 축제 유래에 대한 연극, 축제용 음악회 등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일정이 준비돼 있다.


축제 기간 내에 어린이 파스나흐트도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축제의 전통 캐릭터 외에도 중세 시대의 기사나 공주 혹은 스머프나 스파이더맨 같은 만화나 영화 캐릭터 등의 갖가지 모습으로 분장하고 행진한다. 그 덕에 오히려 할로윈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작년 어린이 축제날 제일 자주 본 인물은 단연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였다.

지난해 모르겐슈트라이히(Morgenstreich) 때 모습.

백미는 축제가 시작하는 날 새벽이다. 아직 새벽이라 하기에도 이른 시각, 칠흑 같은 어둠과 여전한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리다 보면 교회 시계판의 바늘이 네 시 정각을 가리키고 종이 네 번 울린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 개의 랜턴이 켜지며 삽시간에 주위가 환해진다. 그리고 북과 관악기로 구성된 행진음악이 시작된다. 이 행진은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데 특별 제작한 랜턴이 필요하다. 어둠을 가르며 랜턴을 밝힐 이 순간을 위해 시내의 상가들은 모두 간판을 끄도록 돼 있다.


이 새벽 행진을 '모르겐슈트라이히(Morgenstreich)'라고 한다. 이 날을 위해 트램과 버스, 기차 등의 주요 대중교통이 밤새 운영되고 스위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물론 참가자들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준비한다. 작년 우리 가족은 첫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름 꽁꽁 싸맨 후 새벽 행진을 보러 갔지만 모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올해는 6개월을 갓 넘긴 둘째가 있어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축제 전후로는 겸사겸사 2주간 스키 방학이 있다. 초·중·고 학생들은 학교나 교회 등의 기관에서 알프스 등지의 산으로 단체 스키캠프를 많이 간다. 우리 가족은 이제 네 살 첫째 아이에게 스키를 가르쳐볼까 생각 중이다. 작년 겨울휴가에서 걸음마 스키를 배우는 한두 살 위의 아이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았던 아이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스키강습의 최소 연령은 4세 부터다. 하지만 아이 아빠가 바쁜 관계로 확답을 해 줄 수가 없어 요즘 우리 부부는 스키 얘기가 나오면 슬쩍 말을 돌리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떠들썩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해도 되는 이 파스나흐트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사순절이 시작된다. 이때 부활 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금욕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종교적이기보다는 자기 절제의 뜻으로 디저트 제한하기, 음주 제한하기 등의 규칙을 정해놓고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나도 올해는 '단 것 절제하기'를 실천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든 후 하나씩 꺼내 소리 죽여 먹는 단 것들의 유혹에 벌써부터 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②4월 부활절(Ostern)과 부활절 연휴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유럽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학교는 2주간 방학을 하고 대학생들은 기숙사를 떠나 고향으로 찾아간다. 노동자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연휴가 이어진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을 맞이한 성 금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으므로 그전 목요일은 부활절 가족모임을 대비해 한가득 장을 보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빈다. 더불어 파스나흐트 이후부터 한 가지씩 금욕을 실천했던 이들도 부활 당일인 일요일부터는 해방이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평소처럼 출근하는 탓에 시댁에서 주말 동안만 부활절을 보내지만 이 기간에 한 주 이상의 장기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스처럼 기후가 따뜻한 남유럽이나 포르투갈 남부로 가서 미리 여름휴가 기분을 내기도 한다. 유럽의 봄은 변덕과 때에 맞지 않는 저기온으로 악명이 높으므로 위의 장소들은 벌써부터 예약이 차기 마련이다.


부활절 아침이면 아이들은 예쁘게 색칠한 계란과 토끼 모양 과자,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부활 바구니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 몫의 바구니를 얻을 수 있다. 시어머니께서 정성 들여 준비하신 부활절 바구니들은 집 안 곳곳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다. 피아노 뒤나 책장의 꼭대기처럼 평소에 지나치는 장소들을 잘 봐야 한다. 첫째가 네 살인 올해는 스케일을 키워서 정원에다 바구니를 숨겨 두려고 한다. 아이는 과자와 케이크 담당인 할아버지와 함께 할 토끼와 계란 모양 부활절 과자 굽기도 기대 중이다.

시어머니께서 손수 꾸미신 부활절 바구니. 직접 구운 토끼 모양 부활절 과자와 토끼 초콜렛, 닭 인형과 달걀 모양의 초콜렛들.

부활절은 5월 중순에 있는 성령강림대축일을 기념하며 공식적으로 끝난다. 이날은 떠들썩하게 보내지는 않지만 다음 날인 월요일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공식 휴일이므로 연차를 내고 부활절 기간에 못 간 휴가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상반기의 굵직한 계획들은 세웠다. 곧 파스나흐트가 다가온다. 이미 시내는 축제용 옷과 탈로 장식되어 있고 행진용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런 큰 행사에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으므로 올해는 새벽 행진과 본 축제 대신 축제 전부터 시작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올해 첫 가족휴가가 될 부활절 휴가는 부활절이 한참 지난 4월 말에 남유럽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가 취학연령에 들어서면 남들 다 가는 때에 맞춰 가야 하므로 그전에 비수기(?) 휴가의 메리트를 최대한 누려보고자 한다. 하반기 계획도 마저 세워서 휴가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하반기에는 뭐가 있었더라??

바젤=김선진 객원기자  reunite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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