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빌거·전거·월거'
요즘 초등학생들이 상대 친구를 놀릴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주거 형태에 따라 사람을 구분 지어 상대방을 비하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하는데요. 아이가 이런 놀림을 당하지 않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경제적인 부담에도 아파트 구매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올해 첫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최민주(37세) 씨는 "빌라에 살다 같은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라면서 "대출 이자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서 집 문제로 놀림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흔히 엘사라고 하면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을 떠올리겠지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즉,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르는 줄임말로 통합니다. 빌거는 '빌라 사는 거지'를, 전거는 '전세 사는 거지', 월거는 '월세 사는 거지'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오직 일반 브랜드 아파트를 자가로 가지고 있어야 아이가 그나마 '놀림' 신세는 면하는 겁니다.
전셋값만 10억이 넘는 소위 '부촌'으로 불리는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이애리(35세) 씨는 "최근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각자 종부세(종합부동산세)를 얼마씩 내는지 얘기하길래 나는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 뒤로 모임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서 "혹시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을까 걱정돼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최정민(46세) 씨 역시 "지난 가을 전세 계약이 만기 돼 부동산에 갔더니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엄마들이 아이 친구집 등본을 다 떼 보고 놀 친구인지 아닌지 정해준다'는 얘길 하더라"며 "부동산보다 더 좋은 투자처가 많아 그간 집을 사지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집을 안 살 부모가 어딨겠냐"고 푸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는 아파트 브랜드가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지위가 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치원 교사인 김미영(32세) 씨는 "최근 아이들이 노는데 서로를 '자이', '래미안', '아이파크' 등으로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더 가관인 건 한 아이가 '아빠가 우리 동네에서 OO가 제일 좋대'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중심으로 놀이를 행하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정 아파트에 살아야지만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가 있는가 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경기도의 A 아파트는 일명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점에서 분양 당시부터 인기를 끌었는데요. A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A 초등학교에는 해당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는 입학 조차 할 수 없습니다.
A 아파트 인근 아파트에 사는 이유미(41세) 씨는 "거리적으로 가까워서 아이를 A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했지만 학교 측에서 못 받아 준다고 하더라"면서 "학교 담당자 말론 이전에 다른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입학한다고 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세 무산됐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서울의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B 씨는 "재개발로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동네에 들어섰고, 해당 아파트에 입주한 학부모들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반 편성을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며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부모들 영향인지 아이들 사이에서도 해당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로 무리가 갈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지영 기자 jykim@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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