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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Jan 21. 2020

누가 힘 세 번 주면 애 나온댔어?.."#$@&*%~"

"선배, 자연분만할 때 고통이 어느 정도예요?"


최근 만난 만삭의 후배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질문이다.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얘기해줘야 하나, 아니면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좀 살살 말해줘야 하나 말이다. 결국 가장 애매한 답을 내놨다.


"음..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더라. 어떤 엄마는 힘 세 번 주고 낳기도 하고, 어떤 엄마는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해"


사실이다. 아는 독자는 알겠지만 나는 친구들에 비해 조금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서 주변에 조언해 줄 사람이 없었다. 불과 8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리얼한 출산 후기를 다룬 육아 웹툰이나 에세이도 없었다. 내가 출산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친오빠의 아내인 '올케언니'였다. (친정 엄마는 제왕절개를 하셔서 마취가 풀리면 아프다는 정도의 후기가 다였다) 나도 출산을 앞두고 올케언니한테 앞선 후배와 같은 질문을 했다.


"화장실 갔을 때 느낌으로 힘 세 번 정도 주면 쑥 나와. 엄청 시원해. 걱정 안 해도 돼"


세상에 '응가' 누는 느낌으로 힘 세 번 정도 주면 아이가 나온다고? 임신 후 엽산 섭취로 난생처음 변비의 고통을 느껴봤는데 그것보다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올케언니의 얘기에 출산에 대한 걱정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때부턴 오히려 빨리 태평이를 낳고 싶어서 예정일이 다다르자 매일같이 하루 3번 21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하루에 1시간 이상 걷고, 쪼그려 앉아 걸레질을 해댔다.

태평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같이 건넜던 한강

나의 빠른 출산을 위한 노력에도 태평이는 출산 예정일을 열흘을 넘기도록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태명처럼 정말 초 천하태평한 아가였다) 병원에서 제왕절개 날을 받아 온 다음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데 1분이 지나도록 소변이 끊기지 않았다. 이게 바로 엄마의 직감일까? 갑자기 '양수가 먼저 터질 수 있으니 그러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바로 엉덩이 근육에 힘을 뽝! 줘 양수를 멈추게 한 다음 대충 출산 가방을 싸서 택시를 잡았다. 병원에 전화해 나의 상태를 얘기하자 양수가 터진 게 맞는 거 같다며 가능한 한 빨리 오라고 했다.


병원에 가서 바로 산부인과용 의자에 누워 제모를 시작했다. '헐, 이런 자세로 제모를 하다니!' 당시만 해도 브라질리언 왁싱 등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정말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이내 줄줄 흐르는 양수를 보자 굴욕적인 기분보다 태평이에 대한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양수가 터졌다는 얘기를 믿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계속하던 남편은 병원에서 동의서에 사인하기 전엔 애 못 낳는다며 재촉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전화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여전히 남편이 출산과 관련해 나에게 핀잔을 듣는 부분인데, 예비 아빠들은 혹시나 가진통이더라도 아내가 병원에 가보겠다고 하면 무조건 병원으로 뛰어가야 평생이 편합니다!)


남편은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나는 정장제를 먹고 속을 깨끗이 비운 상태(혹시나 출산 시 힘을 주다 얼굴 붉히는 일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에서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를 맞았다. 태명을 너~무 잘 지어서 천하태평한 태평이는 양수가 터져 나온 상태에서도 나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촉진제를 맞았는데도 진통이 전혀 없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의사의 판단에 다음날 새벽같이 유도분만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7시부터 촉진제를 맞았고, 한 시간 동안 아무런 느낌이 없길래 '출산은 엄마 따라간다더니 나도 제왕절개를 해야되나보다'하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아픔이 배에서부터 시작됐다.


'오 마이 갓! 이게 뭐야!'


이후로 진통의 간격은 더욱 짧아졌고, 강도는 더 세졌다. 마치 기차가 배 위를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아픔이었다. 처음엔 이를 악물고 버텨냈지만 강도가 세질수록 나는 세상 낮은 자세로 빌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ㄷㄷㄷ"


세상에 태어나 나의 목숨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그토록 낮은 자세로 간곡하게 구걸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산모는 남편이나 병원 관계자들을 향해 욕을 한다는데 그러면 날 살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극존칭을 써가며 빌었다.


단, 한 명에 대해서만 빼고 말이다. 선생님들이 잠깐 자리를 비우셨을 때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올케 언니 오라 그래! 힘 세 번 주면 나온다며! @#(U$%^@#$_$I^!!!!"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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