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
내가 출산한 대학병원은 자궁경부가 4cm 이상 열려야 무통주사를 놔줬는데, 나의 자궁경부는 얼마나 꽉 닫혀 있는지 4시간이 지나도 1cm 미터도 열리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수간호사 선생님은 내진을 수시로 하면서 자궁경부가 열렸나 확인했다. (☞관련기사 [옆집언니 육아일기]누가 힘 세 번 주면 애 나온댔어?.."#$@&*%~")
솔직히 말해 진통도 진통이었지만 잦은 내진은 더 끔찍했다.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도 팔뚝에 소오름이!) 이건 실제로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고통이라고 단언한다. (출산 한 그날 밤 내진 후유증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도 내진 악몽을 종종 꾸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2시가 다 돼 겨우 4cm가 열렸고 무통주사를 맞은 후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나는 운 좋게 무통천국을 보았다! 나는 그날부터 과학자들을 매우 존경한다) 한 한 시간 정도 잤을까 갑자기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깨우더니 소리쳤다.
"이제 힘줘야 해요. 제대로 안 주면 아이가 힘듭니다. 하나 둘하면 숨을 들이쉬고 셋 하면 화장실 가는 느낌으로 힘을 주세요"
그렇게 개구리 자세(이 역시 굴욕스러운데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굴욕스러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로 30분 넘게 힘을 줬지만 수간호사 선생님은 계속 "그렇게 말고, 제대로! 이러면 아이가 힘들어요!!!!!"라고 소리치며 나를 혼냈다. 도대체 어떻게 힘을 주라는 걸까.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쯤 간호사 선생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레지던트는 이대로 가면 아이와 산모 모두 위험하니 제왕절개를 하자는 거였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산모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지금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다며 조금 더 해보자는 거였다.
결국 양수가 터진 지 24시간이 딱 되기 10분 전, 오후 2시50분이 되면 바로 수술실로 가기로 모두 합의하고 다시 힘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힘주기 바보'였던 나는 계속 헤맸다. 지난 30년 동안 화장실에서 큰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그간 내가 힘을 잘못 줘 왔던 걸까..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건 물론 정신도 혼미했다. 간호사는 호흡을 잘 못하면 아이가 큰일 난다며 내게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아기가 위험하면 어떻게 해요.. 저 그냥 수술할게요.. 수술하게 해주세요.."
아무리 해도 안되자 울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애원하는 순간, 당시 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오래된 친구가 분만실로 들어왔다. 뒤에 '쨘~' 하는 후광을 밝히면서 말이다. (친정 엄마와 남편은 뭐 했냐고 묻는다면, 내가 산통을 느끼는 걸 3분 정도 본 엄마는 엉엉 울면서 나를 쳐다도 못 보길래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병실로 가 계시라고 했고 남편에겐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역시나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야, 할 수 있다. 내 손 잡고 하나 둘에 숨 들이쉬고 셋에 힘주는 거야"
그런데 이게 바로 그 '지인 찬스'인가? 친구 손을 잡고 같이 호흡하며 힘을 몇 번 준 순간, 수간호사 선생님들이 아기 머리가 보인다며 담당 교수님을 콜 했다.
분만실로 교수님이 오셔서 의자에 앉자마자 내 밑에서 뭔가 스르륵 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으앵~'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죽을뻔하다 살았다)
그 뒤로는 몸에 아무 느낌도 기억나지 않고 정신도 흐릿한데, 교수님의 말씀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머 큰일 날뻔했어! 아기 머리가 예상보다 크네!!"
오 마이 갓. 아이를 낳기 전 교수님은 내 골반 크기가 적당하고 아이의 머리고 아주 작기 때문에 순풍! 낳을 수 있을 거라며 제왕절개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이건 무슨 말씀?!
하지만 당시엔 선생님이 오시자마자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지금도 그 감사한 마음은 여전하다. 제때 오셔서 아이가 무탈했고 또 후처리도 잘 해주셔서 그 이후 나 역시 고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양수가 터지고 2번의 유도분만을 시도하고 7시간 46분간의 진통과 힘주기 끝에 제왕절개를 합의하기 14분 앞둔 오후 2시46분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새끼 태평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대부분 둘째를 낳는 이유에 대해 아이가 너무 예뻐 출산의 고통을 금방 잊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나쁜 엄마인 걸까? 태평이는 말로 표현할 수없이 사랑스럽지만 봄이 찾아오던 3월의 어느날 출산의 고통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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