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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Nov 27. 2020

[좌충우돌 난임일기]휴식기 그리고 재출발을 위해

"아이 갖기 위한 노력.. 좀 쉬어 볼까?"


남편과 상의 후 다니던 난임병원을 그만 다니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려 여덟 차례나 임신에 실패했다. 한동안 임신과 난임에 관해서는 아예 잊은 채 지내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꼬박 1년 동안 한 달도 쉬지 않고 채취와 이식을 반복했다. 그동안 모아둔 병원 영수증과 기록지를 한데 모으니 두꺼운 책 한두 권 정도의 분량이 됐다. 돈도 많이 썼고 몸과 마음이 지쳤다. 질릴 만도 했다. 모든 원인은 우리 부부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병원비를 지불했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속이 상했다.

그래 할 만큼 했어. 다시 할 때 하더라도 좀 쉬자.

임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일상이 여유로워졌다. 오랜만에 신혼 초 푹 빠졌던 캠핑도 가고 자전거도 맘껏 탔다. (자전거 타기는 자궁에 무리를 준다는 속설이 있어 기피했던 운동 중에 하나다.) 식탁 위에 두고 매일 챙겨 먹던 영양제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으로 옮겨 두고 주사 투약 시간을 설정해 둔 알람도 지웠다. 사라질만 하면 다시 생겼던 배 주사로 인한 피멍 자국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지인들의 임신 소식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다 또다시 배란일이 돌아오면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숙제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맘 놓고 쉬는 동안 '난소 나이 수치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한두 차례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시험관 시술을 쉰 지 반년쯤 지났을까. 우리 부부는 새로운 난임병원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상담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내게 자궁과 나팔관을 모두 들여다보는 진단 복강경 시술을 권했다. 나팔관 상태가 나빠 임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절제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실 새로운 병원을 방문하기 전에는 복강경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는데 검색하면 할수록 겁이 났다. 


지금까지 임신이 안 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왠지 자궁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겁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너무 겁나면 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내 자궁 안은 어떻게 생긴 걸까.

수술 당일이 되어 수술 가운과 수술모를 착용하고 준비한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전신마취로 진행돼 "이제 졸리시죠?"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 이후론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회복실이었다.
 
"아파요..."


마취에서 깨 눈을 뜨자마자 아랫배와 골반 쪽에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유형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파요 아파요.. 기도삽관의 영향으로 목이 엄청 아팠는데 흐리멍덩한 정신에도 아프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진통제를 맞고 통증이 줄어들자 수술이 잘 됐는지, 나팔관은 무사한지 궁금해졌다. 그때 내게 다가온 간호사가 양쪽 나팔관을 절제해서 당일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흐린 정신에 네.. 하고 대답하고 난 뒤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 나팔관이 없다고?! 두 곳 다 절제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을까? 이제 자연임신은 안 되는구나..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순히 신체 일부가 사라진 것을 넘어 더이상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선고이기도 했다. 


김지영 기자 jykim@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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