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일찍 보낸 어린이집..깊어진 가족애(愛)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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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어린 것을 두고..

워킹맘, 전업맘 할 것 없이 엄마라면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뒤로하고 어린이집 문을 닫고 나올 때 가슴을 치며 한 번쯤은 했을 법한 생각이다.


아이가 있는 집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한 번은 겪는 ‘(보육·교육)기관 적응’. 말이 기관 적응이지 그야말로 생이별이나 다름 없다. 태어나 처음 겪는 생이별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상당한 시련의 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의 최종 목표는 ‘현모양처’였다. 그 배경엔 친정 엄마가 있었는데, 아빠를 내조하고 남매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 진정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나면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같은 삶을 살길 꿈꿨다. 하지만 육아휴직에 들어 간지 6개월도 되지 않아 그 길은 내 길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우쳤다.


집에서 혼자 아이만 보는 삶은 내게 맞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뭔가 부족했다. 모유수유-이유식-집안일-아이보기의 무한 반복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수없이 고민 하게 했다. 지긋지긋 했던 출근길이, 보기도 싫었던 노트북이 너무나 그리웠다. 결국 난 회사로의 복귀를 결정했다.


입소 가능한 어린이집을 찾아 근처로 이사하고, 태평이와 함께 어린이집 적응기를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등원하는 적응기 초기엔 괜찮았다. 하지만 적응기가 중반에 들어서고 아이를 혼자 두고 나오는 첫날 아이는 뭘 알기라도 한다는 듯 내가 몸을 돌리는 순간부터 기절할 듯 울기 시작했다.


순간 갈등하는 나를 보고 원장 선생님은 “엄마가 망설이면 아이가 더 힘들다”며 내 등을 떠밀었다. 떠밀려 나와서도 한참을 발길을 떼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였다. 그때 어린이집 문이 열렸고 선생님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게 말했다.


“죄책감을 갖지 말아라. 우리 어린이집엔 전업맘 아이들도 많다. 하루 종일 애와 즐겁게 노는 건 아무리 천사같은 엄마도 어렵다. 특히 둘이 되면 더 그렇다. 예전엔 대가족이었으니 잠시 쉴 틈이라도 있었지,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엔 그렇지 않다. 언제고 한 번은 기관이란 곳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처음 실패하면 두번째, 세번째도 실패할 수 있다. 나이가 찰수록 기관 적응은 어려워진다. 이왕 시작한 거 마음 굳게 먹어라. 돌아갈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원장 선생님 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주차장으로 뛰어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의 말을 되새겨 봤다.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었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시기가 조금 늦을 뿐 언젠가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렇다면 회사를 돌아갈 기회가 있는 지금이 적기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재로서의 최선은 이거다.’ 스스로 괜찮다고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그러기를 2주. 아이도 점점 우는 시간이 줄었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던 내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691_1093_844.jpg 겨울이면 깜깜해져 집에 돌아왔던 태평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낮이 짧은 겨울은 내게 '추운 계절'이기보다 '마음이 더 아픈 계절'이 됐다.

출근 첫날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제 엄마가 회사에 가야 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지 태평이도 울지 않네요.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답니다. 걱정 마세요.

위안은 됐지만 걱정을 완전히 떨칠 순 없었다. 어린이집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 사진을 볼 때마다 웃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무표정한 태평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활짝 웃는 모습이 사진에 담기기 까진 그 후로도 한달이 걸렸다. 그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정도로 적응기가 끝났을까? 절대 아니다. 1년은 지속된다. 심리적 적응기가 끝나면 육체적 적응기가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 콧물을 내내 달고 살고 수족구에 구내염까지, 어린이집에 도는 질병은 다 걸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평이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던 홍역까지 앓았으니 말 다했다. 그때마다 이제와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워서 버텼다.

691_1094_1244.jpg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주말에도 당직 땐 출근 해야 했다. 아이가 깨서 매달릴까봐 당직 때도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로 갔다. 당직 중 남편이 보낸 사진 한장.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이제 아이는 엄마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는 시기가 됐다. 4박5일이 넘는 휴가 땐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할 정도니 섭섭하기까지 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아이가 자연스레 친구들을 찾기까지 3년만 더 품고 있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NO’다. 그 과정을 겪었기에 지금의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는 거다. 태평이는 사회생활을 일찍 해서 그런지 말이 빠른 것은 물론 사회적 규칙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 더 발달했다.


더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은 같이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상대적으로 빨리 안 만큼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더 똘똘 뭉쳤고 가족애가 아주 깊어졌다. 이것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물론 잃은 것도 있을 거다. 하지만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값지다는 믿음이 있다면 충분하다.


어쩔 수없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워킹맘도, 혼자서 아이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어린이집 보내길 고민하는 전업맘도 죄책감은 접어두자.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의 말처럼 언젠가는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사회 기관에 적응해야 한다. 또한 아이는 부모의 생각보다 강하다.


어린이집을 지금 보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보다 아이가 더 잘 적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더 잘 놀아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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