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배운다

by 올리브노트
1435_3483_2226.jpg

어제 볼 일이 있어 하루 반차를 냈다. 내 출근시간에 맞춰 늘 1등으로 등원하는 태평이가 안타까운 마음에 같이 일을 보고 느지막하게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정문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태평이는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친구들이 야외활동을 하기 위해 겉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잡고 있던 내 손을 더 꼭 잡으며 놓으려 하지 않았다.


태평이: "바깥 놀이하고 싶지 않은데..(글썽글썽)"

나: "그럼 태평이는 교실에서 책 읽고 있어도 되잖아?"

태평이: "아니.. 밥 먹기가 싫어요..(글썽글썽)"

나: "그럼 엄마가 선생님한테 태평이 밥 먹기 싫으니 조금만 달라고 얘기할게"

태평이: "아니.. 아니.. 엉엉"


순간 그날 아침 워킹맘이라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늦은 등원'이라는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최근엔 태평이가 이런 적이 없던 터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아..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할걸.. 괜히 이게 뭐야.. 오히려 일이 어그러졌네'


그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회사에 전화해 오후 반차도 쓰겠다고 하는 것과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출근하는 것. 전자를 택하자니 행여나 선후배들이 '역시 애 엄마는 안돼'라고 생각할까봐 신경이 쓰였다. 후자를 선택하자니 뒤가 당겨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우선 태평이를 달래 보기로 했다. 아이와 10여분 정도 얘기한 끝에 결국 밖에서 같이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오는 것으로 타협했다.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점심시간이 끝난 후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태평이 손을 잡고 나오면서 점심 약속을 했던 지인에게 전화해 양해를 구했다. 평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당장 그날 점심을 미루자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전화를 끊고 차에 올라타 아무 말없이 크게 심호흡을 몇번 한 뒤 시동을 켰다.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태평이가 밉기도 했다.


"점심 뭐 먹을래?" 화를 내진 않았지만 짜증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차디찬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태평이의 대답은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1435_3455_1421.jpg 아직 어린 태평이는 엄마랑 있고 싶다는 마음에 떼를 썼지만 막상 그렇게 되니 내 상황을 걱정했다.
"엄마.. 나 때문에 미안해..."


아, 내가 또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이를 낳은 후 기어이 회사로 돌아온 것도, 죄책감에 아이를 늦게 등원시킨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다. 내 꿈을 잃고 싶지 않아 회사에 복귀했고, 평소 가졌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태평이를 늦게 등원시킨 게 아닌가. 어떻게 보면 모두 나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 대해 결국 난 아이 탓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은 후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태평이가 왜 미안해. 그럴 거 없어. 엄마 회사에 가도 안 혼나니까 걱정하지 마. 선배들이 태평이랑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했어"


태평이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웃으며 비빔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비빔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어린이집으로 돌아가 교실로 들어가면서 태평이는 다시 한번 내 목을 끌어 안으며 "오늘 나 때문에 미안해"라고 소곤댔다.


아..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컸을까! 가끔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아이를 보며 대견함과 동시에 잠시나마 내 감정에 취해 아이에게 짜증을 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저작권자 © 올리브노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sentence_type.png


매거진의 이전글[옆집언니 육아일기]'관심'과 '간섭' 그 애매한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