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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Feb 08. 2018

[옆집언니 육아일기]'관심'과 '간섭' 그 애매한 경계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 속 명대사다. 최근 이 대사를 인용한 아동학대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해당 기사의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뜻한 주변의 관심이 여러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다. 방관자였던 주변인, 우리들 역시 공범이다'라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작은 관심은 생명을 구한다. 반대로 사소한 일이겠지 하는 방관으로 생명의 불이 꺼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자칫 따뜻한 '관심'이 '간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 너~무 많이 갔을 수도 있다는 걸 앞서 인정하고 시작한다)


많은 엄마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본인 자식도 아닌데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오지라퍼'들이다.


나 역시 초보맘 땐 잘 모르는 아이가 넘어져 있으면 일으켜 세워주고, 내 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보는 아이가 있으면 과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세요~"라고 얘기하고 그네 발구르기를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뒤에서 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정작 그 부모들에겐 '이상한 여자의 오지랖'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말이다.


'왜 스스로 일어나게 두지 뭐가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손으로 남의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거야!' '우리 애는 이런거 안 먹이는데 왜 주는거지?' '남의 아이가 싸우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야!' '위험하게 그네는 왜 밀어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주 친한 친구의 딸이 화단에 예쁘게 가꿔진 꽃을 마구잡이로 잡아 뜯고 있는 걸 보고 "그렇게 하면 꽃이 아파~ 눈으로만 보자~"라고 했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친구는 "나는 내 자식이 아니면 그 애가 뭘 하든 그냥 놔둬. 아이 교육은 부모가 하는 거지 남이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요즘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라며 꽃을 뜯고 있던 본인의 아이에게 내가 한 마디 한 것을 두고 돌려 얘기했다.


그때의 충격이란.. 친구도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거다.

어느 부모나 내 아이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길 바란다.

경험해 보니 부모들마다 자신들의 신념에 따른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공통의 교육관'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공통의 교육관이라는 것에도 '아주 세심한 다름'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될 수 있으면 남의 아이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문제가 생겨도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다.


최근 쇼핑몰 한구석에서 여섯살 정도 된 아이를 나무라며 마구 때리면서 혼내는 부모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판단엔 구타 수준이였기에 말려야 하나 잠깐 망설였지만 역시나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체벌에 대한 생각도 부모마다 모두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절대 없어져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주변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관심이 혹시나 '쓸데없는 간섭'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선뜻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나는 관련 분야 전문가도 아닌 그저 주변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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