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놓고 아플 수도 없는 나는 '엄마'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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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구나... 진짜 서럽네'

누구나 아플 때 가장 서럽다지만 특히 아픈 몸 한 번 마음 편하게 뉠 수 없는 엄마가 되고 나니 더욱 그렇다.


며칠 전 감은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정신없이 출근한 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목이 따갑고 아프기 시작했다. 목감기인듯싶어 잠깐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올까 했지만 월요일이라 할 일도 많고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려면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패스했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니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될 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일하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기 무섭게 시계 작은 바늘만 바라보고 있을 태평이를 생각하며 어린이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태평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나도 놀고 싶은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한 태평이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올 때까지 친구들이 밖에서 노는 소릴 들으며 얼마나 부러웠을까?' 미안한 마음에 쿨하게 허락했다.

1515_3704_2127.jpg 엄마가 아픈지 알 턱이 없는 태평이는 친구와 함께 노느라 신났다. '그래 너만 행복하다면 내 몸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태평이를 향해 웃어보였다.

태평이가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걸 보면서 내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지만 감기에 걸린 몸은 쌀쌀한 날씨에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모여있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갔고 주말에 장을 못 봤던 우리는 동네 마트로 향했다. 외식을 고민했지만 태평이가 다음날 아침 먹을 것도 없었기에 겸사겸사 장을 보기로 했다.


마트에 가는 길, 바로 옆에 있는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열이 오르면서 살갗만 스쳐도 아프기 시작했기에 잠시 병원에 들를까 했지만 역시나 패스. 혹시나 진료가 늦어지면 태평이의 저녁과 수면 시간이 모두 늦어지고 다음날 기상시간까지 영향을 줄 게 뻔했다.


'나 하나로 아이의 리듬이 깨지면 우리 가족 모두의 생활이 흐트러지잖아. 아직 월요일인데 이러면 일주일이 힘들어질 거야'

결국 후다닥 장을 본 후 집에 도착해 태평이를 씻기고 저녁을 준비했다. 배가 고픈지 태평이는 자꾸 부엌을 얼쩡거리기 시작했고 아픔을 잊은 내 손은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별 탈 없이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끝낸 뒤 세탁이 끝난 빨랫감까지 널자 그날 해야 할 일은 거의 다 마무리됐다.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 내 태평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거의 잠에 들려는 순간. 방 문이 열리며 기세등등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515_3731_4312.jpg 마지막 남을 힘을 짜내 책 읽는 시간. 이 시간만 지나면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나 빨리 왔지~태~평아!!!

태평이 방 문 사이로 남편이 고개를 내민 순간 나는 칼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어둠 속에서도 서슬 퍼런 내 눈빛을 느낀 남편은 조용히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이미 아빠를 본 태평이는 이미 방문을 열고 망아지처럼 뛰쳐 나갔다.


가뜩이나 몸이 아파 빨리 재우고 쉬려던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 순간. 아이 재우는 건 남편에게 맡기고 내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씻은 후 태평이를 재우려던 남편은 미안했는지 나에게 오더니 소곤댔다.


엄마가 아프면 온 집안이 흔들린다고 내가 그랬지? 그러니까 아프지 마~


결혼 후 지난 6년간 남편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인데 그날따라 거슬렸다. 나의 건강을 무엇보다 생각해주는 고마운 마음이겠지만 거대한 파도처럼 짜증이 밀려왔다. 그 짜증은 결국 목구멍을 뚫고 입 밖으로 나왔다.


왜 나는 아프지도 못해? 나도 아플 수 있지. 그런 말 하지 마!


갑작스러운 나의 화에 남편은 깜짝 놀란 모양인지 머리를 긁적이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1515_3722_3536.jpg 결국 다음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점심시간을 이용해 링거를 맞았다. 병원에서도 빨리 일을 끝내고 태평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태평이를 가지고부터 지난 6년간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임신했을 때는 행여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태평이가 어릴 땐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에) 내가 아프면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내가 아프면 잘 돌아가고 있는 우리 집 쳇바퀴가 삐거덕 거릴까봐 말이다.


'아...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 엄마의 팔자라니...!'


치밀어 오르는 서글픔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더 심한 고통을 느끼며 일어난 나는 휴가를 쓸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어린이집 방학과 혹시나 아이가 아플 경우를 생각하자 지금 내게 휴가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기어코 출근한 후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을 찾았고 내 목구멍을 새하얗게 만들어버린 염증을 긁어낸 후 링거를 맞고서야 정신을 조금 차렸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겼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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