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키즈

장난감이 대체불가한 '부모'란 자리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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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장난감 이거 사줘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둘째 아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유치원을 다녀온 후 몰래 스마트폰으로 본 유튜브 동영상에서 또 뭔가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했나보다.


너 장난감이 저렇게 많은데 또 뭐가 필요해


난 한마디 툭 내뱉곤 방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엄마가 자신의 집을 그렇게 표현하겠지만, 우리 집 역시 정말 살짝 오버해서 '토이x러스 저리가라'하는 수준이다. 아마 키즈 유튜버들이 광고(?)하는 상당수 제품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첫째 아이는 혼자 책도 읽고 보고 싶었던 TV채널도 찾아볼 테지만,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둘째 아이는 언니가 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말곤 할 게 없을 터.

1492_3621_388.jpg 자매이다 보니 아이들이 서로 잘 노는 편이다. 하지만 종종 엄마 아빠가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며 삐치곤 한다.

결국 또 괜스레 미안해진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날 저녁, 아이들과 장난감 매장으로 출동했다. 넓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두 아이는 '와!' 소리를 내며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사고 싶은 장난감을 고르지 못하고 판매대 앞에만 서 있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막상 매장에 오니 사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새로 장난감을 사오긴 했으나 크게 흥미를 갖지 않는다. 아니 장난감을 들고 와도 어느새 아빠 옆에 자리를 잡고 놀고 있었다. 주말마다 대학원 수업 때문에 집을 나서는 아빠는 미안한지 외출 준비를 하며 아이들에게 장난을 쳤다. 아빠가 움직이는 길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원래 그 자리에서 놀고 있었던 양 계속 장난감을 만졌다.


이제 나갈 시간이 된 아빠가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하자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 장난감이나 손에 쥐고 "엄마랑 놀자"고 했다. 손에 잡힌 장난감을 보니 평소 아이들이 잘 가지고 놀지 않던 장난감들이다.

1492_3622_3930.jpg 엄마랑 놀이터를 갈 때보다 아빠와 놀이터에 갈 때 아이들은 더 신나 보인다.

게임 방법을 막 지어내 아이들과 꽤 오랜 시간을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은 이제 그 장난감을 제일 잘 가지고 논다) 그 장난감을 치운 후엔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었다. 그 뒤론 내 옆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더 이상 장난감은 거들떠보지 않고 말이다.


결국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은 장난감이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노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맞벌이인 아빠, 엄마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장난감이었기에 계속해서 사달라고 했나 보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아이들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이들만 우리가 낳았을 뿐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492_3623_501.jpg 지난 주말 아이들과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 서울에서 많이 멀지 않은 대천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지금의 육아 전문 매체로 일터를 옮기기 전까진 돈을 버는 것이 가정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갖고 싶은 옷, 장난감을 사주는 게 부모가 할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의 내 생각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달리 맞벌이인데도 일하는 시간이 아닐 땐 오롯이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편 역시 내 생각에 공감했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했다. 지금의 우린 시간이 날 때마다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주말이면 가까운 놀이터나 도서관을 다니고 퇴근 후엔 아이들과 모여 수다를 떤다.


여전히 아이들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달라진 점이라면 아이들이 장난감을 아빠, 엄마 옆에서 혼자 가지고 노는 시간보다 함께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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