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전업맘이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하루에 내가 가장 얼굴을 많이 본 사람은 아기와 남편 그리고 택배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싶다. 집에만 있으면 뭐가 이렇게 없는 것만 떠오르는지.. 그렇게 주문한 택배 상자들이 한날한시에 도착하면 현관 앞에 주르륵 쌓인다. 택배 상자를 뜯는 게 사는 낙이었던 시절이었던 터라 도착하기 무섭게 포장을 뜯어냈다.
이건 신랑 스킨 로션이고 이건 신랑 양말. 이건 아기 기저귀, 아기 내의..
택배로 도착한 남편과 아이 물건을 정리하고 난 뒤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택배 상자를 뜯어 정리하고 나면 왠지 허무하다. 내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내 물건을 사지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아이를 낳고 난 뒤엔 내 것보단 아이와 남편 것, 뭐든지 가족들 것을 먼저 챙기게 됐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 결혼, 남편 외벌이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던 탓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좀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하고, 최대한 지출을 하지 않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이 뱄다. 연애할 때 구두를 즐겨 모으던 날 위해 신발을 선물해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구두를 담았다 빼기를 반복하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한 채 넘어간 적도 있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단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곳에 써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처녀 때의 내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 번 돈으로 갖고 싶었던 옷, 액세서리, 취미용 피규어 등을 샀던 그때와는 정반대다. 결혼 전만 하더라도 '반짝반짝 액세서리, 높은 하이힐,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 평범한 일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에! 비싸기만 하고 불편한 저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녔었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난 변해있었다.
하이힐보단 플랫슈즈나 운동화를 즐겨 신게 됐고 치렁치렁한 액세서리 대신 아기띠를 두르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반짝이는 명품 미니백보단 기저귀와 아이 옷들이 모두 들어가고 가방을 메도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백팩이 편해졌다. 큰맘 먹고 아이를 잠시 맡긴 채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와도 아이를 돌보다 보면 항상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로 변해있었다. 새로운 것을 사기보단 편한 것에 적응돼 갔다.
그렇게 3~4년이 흘러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집에서 첫째 아이와 뱃속의 태아를 함께 돌보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부스스한 머리,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 볼록 나온 배. 거울 속 내 모습만 보면 밥을 먹기가 싫고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이유 없이 눈물만 나는데 시원하게 울고나도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어느 날 내게 자유시간을 선물했다. 오랜만에 혼자 밖에 나가 길거리 쇼핑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내 기분이 좋아지니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빠와 아이도 한층 더 밝아졌다. 그때부터 난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을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를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나'를 챙기는 것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종종 날 위한 선물을 한다. 그 선물은 물건이 될 수도,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인터넷으로 주문한 4000원짜리 나노 블럭를 꺼내 한참을 맞추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사라진다. 큰맘 먹고 산 게임기를 꺼내 남편과 자동차 경주를 펼치기도 하고 이불 속에 파묻혀 큐브를 맞추기도 한다.
가끔 영화, 전시 할인 혜택이 있는 문화의 날에 퇴근한 뒤 혼자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자동차 등과는 비교도 못할 소소한 선물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일과 육아에 지친 나에게 기분전환을 위한 선물로는 충분하다.
과거의 나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 육아에 지쳤다면 오늘은 나를 위해 작은 선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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