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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수다]엄마 친구와 아이 친구는 다르다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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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보영이는 유치원에서 유독 한 친구하고만 놀아요. 요즘은 학부모 모임에서 애들끼리 모여 노는데 보영이는 엄마가 그런 자리를 못 가셔서 그러는지 친구가 없어요


2년 전 첫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학부모 상담에 참석한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혹시 내 아이가 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 눈 앞을 가렸다. 뒤이은 선생님의 한 마디는 나를 더 울컥하게 했다.


다른 워킹맘들은 주말에 학부모 모임까지 만들면서 관리하던데.. 엄마가 서로 친하게 지내면 아이들도 친해지기 더 쉬우니까요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안타까운 마음에 던진 듯한(?) 선생님의 조언은 내 심장을 파고들어 비수처럼 꽂혔다. 온전히 아이만 신경 쓸 수 없는 워킹맘이란 사실에 가뜩이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의 교우관계까지 내 탓이란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상담을 마친 후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바쁜 업무 탓에 학부모 상담도 '눈치껏' 어렵게 참석했던 날이었다. 노트북을 켰지만 이런 기분으론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혹시 날 아는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볼까 두려워 화장실 한 켠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065_2383_2740.jpg 학부모 모임 참석에 대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엄마들의 실제 의견이다.

같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며 간혹 연락을 주고받던 엄마에게 SOS를 친 덕분에 며칠 뒤 반 친구 엄마들의 점심 모임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연차까지 쓰고 참석한 학부모 모임은 생각했던 것보다 얻은 게 많은 자리였다. 집 주변 괜찮은 놀이터부터 요즘 핫한 학원까지 나오지 않는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리에서 외딴 섬이었다. 아는 게 없는 나는 그들에게 줄 정보가 없었고 같이 경험해본 게 없으니 이야기 대부분을 따라가지 못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관심사나 교육관도 전혀 달랐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유일한 내 장점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에 있는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지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좋은 의도로 모인 엄마들의 모임에 나는 '친구 만들기'라는 목적만 가지고 참석했고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을 학부모 모임에 참석한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내 탓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처럼 학부모 모임에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어울려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을 동행해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서로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고 같은 반 다른 친구들보다 더 빨리 친해질 가능성이 높다. 입소문으로 퍼지는 고급 육아, 교육 정보를 얻기도 쉬운데다 육아와 가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1065_2381_1222.PNG 친구들이 있어 학교가 너무 좋다는 첫째 아이. 그래서인지 하교만 하면 친구들과 노느라 놀이터를 떠날 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첫째 아이와 유일하게 친했던 그 친구가 다른 유치원으로 옮겼다. '이제 우리 애가 함께 놀 친구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도 유치원 생활이 즐거웠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놀았는지 아이와 자주 대화하며 한걸음 뒤에서 아이가 스스로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를 지켜봤다. 다행히 아이는 그 친구의 빈자리를 금세 잊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무탈하게 유치원을 졸업했다.


다니던 유치원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친구가 거의 없었지만 이 역시 걱정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의 첫 단계인 초등학교에서 내 아이는 스스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또래 친구의 엄마를 잘 알지 못하고 친한 엄마 친구도 없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친구를 만들며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엄마끼리 친하다고 해서 아이들도 친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 친구와 아이 친구는 다르다. 오히려 아이들끼리 먼저 친해진 부모와 마주쳤을 때 "우리 아이가 OO얘기 많이 해요"라는 말을 꺼내며 가까워지곤 했다.


'워킹맘이라 시간이 없어서' '나는 도저히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학부모 모임을 가지 못했더라도 걱정하지 말자.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많다. 교우 관계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가 편히 말할 수 있는 존재, 어려운 일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힘을 되고 응원해줄 수 있는 절대적 지지자 같은 역할 말이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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