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여기까지 오긴 왔네"
임신과 출산으로 지칠 대로 지친 산모의 회복을 돕고 본격적인 전투육아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휴식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산모들에겐 천국에 비견되는 산후조리원. 남들보다 기나긴 병원생활을 한 콤콤이 엄마와 내겐 더 반가운 곳이다.
하지만 조리원 입소 첫날부터 상황은 꼬였다. 수개월 전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집 근처 조리원 여러 곳을 돌아보고(일명 조리원 투어) 일찌감치 한곳을 찜해 예약해뒀건만 예상보다 아이들이 이르게 나온 탓에 미리 예약해둔 VIP실은커녕 일반실조차도 자리가 없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으로 가서 조리를 할 상황도 아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조리원에서 비상시를 대비해 마련해둔 예비방을 며칠 쓰고 방을 옮기기로 했다. 가뜩이나 오랜 병원 생활로 고생한 콤콤이 엄마를 좁고 불편한 예비방에서 쉬게 하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콤콤이 엄마는 어두운 표정의 날 보더니 그래도 병원보단 낫지 않냐며 오히려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로부터 두 번을 더 이사했다. -.-;;)
사실 조리원 방보다 콤콤이 엄마를 더 괴롭힌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젖몸살'. 올리브노트에서 '옆집언니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있는 후배의 경험담을 통해 젖몸살의 고통을 어림짐작하긴 했지만 막상 콤콤이 엄마가 이로 인해 고생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퇴원 이틀을 앞두고 시작된 젖몸살은 조리원 입소 후 더 심해졌다.
하긴 이럴 경우를 대비해 직장인 한 달 월급을 훌쩍 넘는 비용을 내고 조리원에 들어온 것 아닌가. 우리의 SOS에 언뜻 보기에도 산후조리 경력이 20년은 족히 넘을 듯한 실장님이 출동했다. 이런 상황에 워낙 익숙해서인지 콤콤이 엄마의 가슴을 몇 번 만져보고선 곧바로 가벼운 마사지부터 유축기를 통한 모유 배출, 양배추를 이용한 냉찜질 등 젖몸살을 풀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시연한다.
베테랑의 현란한 작전과 전문 마사지사의 손길 덕분에 콤콤이 엄마의 젖몸살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추가 비용을 내고 받은 마사지가 효과를 발휘했다. 비용을 지불하는 남편 입장에서 분명히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출산의 고통과 그 후유증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할 몫이다.(이건 절대 빈말이 아니니 오해마시라. 직접 경험하면 똑같이 느끼게 된다.)
산모의 남편이 아니고선 전혀 경험할 일이 없는 이런 상황에 '아, 내가 정말 아빠가 되긴 됐구나'라고 자각했다. 자, 이제 콤콤이 엄마는 2~3일에 한 번씩 콤콤이를 보러 가는 것 외엔 아무 생각 말고 조리원에서 푹 쉬는 걸로.
그럼 난? 이제부터 '아빠는 슈퍼맨이자 어벤저스 슈퍼 히어로'다.
아내가 조리원에 들어가 있는 2주간 육아전쟁 전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라는 선배 아빠들의 얘기는 그야말로 남의 얘기. 출근 후 점심시간 또는 저녁시간을 이용해 적어도 매일 한 번은 콤콤이 면회를 다녀와야 하고 퇴근 후에는 조리원에 있는 콤콤이 엄마를 챙겨야 한다. 세탁기 통세척 후 가제손수건, 아이 옷 등을 미리 빨아 두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도 깨끗이 하는 것도 내 임무. 아.. 카시트도 세탁해 차에 설치해야 하는구나. 회사 업무에도 충실해야 하는 것도 당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보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면서 너무 감사한 건 상콤이와 달콤이가 우려와 달리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거다. 처음엔 젖꼭지도 제대로 빨지 못하고 한 번에 분유 20~30cc 먹는 것도 버거워하던 콤콤이는 날이 갈수록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해(?) 가면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콤콤이가 입원한 병원에선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의 몸무게를 잰 뒤 그 결과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데, 정체기인 일주일을 지나고부터는 두 녀석 모두 체중이 하루 40~80g씩 쑥쑥 늘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콤콤이 몸에 부착됐던 각종 의료기기들도 하나둘씩 떨어졌다.
너무 작은 콤콤이 모습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면회 때마다 울컥하기 일쑤였던 우리 부부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조리원 입소 후 며칠간 다른 산모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에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던 콤콤이 엄마는 곧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힘을 냈고, 얼떨결에 슈퍼맨이 돼야 했던 나 역시 피곤함을 잊고 삶에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긴 고민 끝에 상콤이와 달콤이의 이름도 지어졌다. 우리 부부가 수개월 동안 짜낸 아이디어에 무료 작명 어플리케이션 한두 개 정도만 이용하면 충분히 지을 줄 알았건만 결국 작명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작명가와 상의할 걸 그랬나... 이름을 지었으니 이제 아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등록시켜줘야지.
출생신고서는 간단한 것 같으면서 은근히 쓸 게 많다. 특히 아이들 한자명은 혹시라도 잘못 쓰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또다시 슈퍼맨이 출동했다. 출근 후 잠시 짬을 주민센터에 가서 출생신고 서류를 작성했다. 남들은 한 장만 작성하면 되겠지만 난 두 장이다. 앞으로 뭐든 한꺼번에 두 개를 해야겠지. 난 둥이아빠니깐.
그렇게 내가 둥이아빠의 숙명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가운데 콤콤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부부 곁으로 왔다.
김기훈 기자 core8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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