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 출산 후 아내는 친정 근처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몸조리를 했다. 퇴근 후면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조리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내가 잘 쉬고 있는지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 꼬물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보, 내가 집에서 집안일이든 육아든 다 할 테니 얼른 집으로 가면 안될까?
아직 하루 남은 조리원 생활. 아이를 옆에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평상시에 잘 하지도 않던 고집을 부렸다. 지난 주말 조리원 숙식(?)을 하면서 선생님들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퇴원을 하루 앞당겨 나는 아내와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선택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집에 도착하자마자였다.
호기롭게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건만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뒀으니 됐지' 막연히 생각했던 게 첫 번째 실수였다.
오빠, 아기가 배고픈가봐. 분유를 먹여야 하니까 젖병 좀 챙겨줘.
두 시간 전에 모유 수유하는 것을 내 눈으로 분명히 봤는데 신생아의 식사시간은 매우 짧고 잦다는 것을 배웠다. 출산 전 아내가 닦아 놓은 아기의 젖병들. 그새 먼지라도 쌓였을까 설거지를 시작했다. 평소 집안일을 많이 해온 터라 설거지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매끄럽게 잘 빠진 젖병은 거품이 묻은 손으로 잡기 쉽지 않았다. 처음 사용해보는 독특한 모양의 젖병 솔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거품이 튀게 했다.
'유리 젖병은 뜨거운 물에 소독하는 게 좋다던데'
배고픈 아이는 아빠의 느린 분유 준비에 속이 타는지 계속 울어 댔다. 그 모습에 놀란 나는 황급히 끓는 물에 젖병을 넣었다 손까지 뎄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엄마를 찾으며 울고 싶었다.
젖병과 실랑이를 끝낸 후 어렵게 만들어온 분유를 아기가 먹기 시작했다.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분유를 먹는 모습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천국 같은 시간은 몇 분 만에 끝이 나고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저귀도 확인해보고 옷이 불편한 건지 살펴도 봤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방에서 쪽잠이 든 아내를 깨우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를 출산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안쓰럽고 대단하다)
아, 조리원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조리원 선생님들의 노고를 잘 알지 못했다는 게 나의 두 번째 실수다. 아이가 조리원에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돌변했다. 일단 우는 아이를 품에 안자 맙소사.. 내 어깨에 토를 했다. 토닥토닥 등을 쓰다듬고 나서야 트림을 하고 눈물을 멈췄다. 아이도 속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초보 아빠를 만나 너도 고생하는구나.
이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신생아가 대소변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기저귀를 갈고 뒤돌아서면 또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그렇게 기저귀를 갈고 나면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첫날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온라인 카페, 블로그, 책 등을 통해 정말 많이 공부했는데 역시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날 하루만큼은 군대 막내 시절 못지 않게 힘들었고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괜히 육아 전쟁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지금까진 육아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랐던 점이 이날 내 세 번째 실수였다. ㅠㅠ
아내와 조리원 선생님의 대단함에 큰 깨달음을 얻은 하루. 몇 년 뒤 우리 부부에게 둘째 아이가 생겼다. 그땐 '쉴 수 있을 때 쉬자'는 마음으로 조리원 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와 집에 돌아오기 전날 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이번 내용은 평소 막수다를 즐겨보는 육아빠 독자가 보낸 사연입니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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