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요. 어느 정도냐면 3년 넘게 다닌 어린이집에 조금 늦게 등원했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교실 안에서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면 부끄러워서 도망갈 정도예요. 특히 엄마 아빠와 같이 있으면 이런 행동은 더 심해지죠. 무엇보다 가장 속상한 건 아이가 본인의 뜻을 전달하지 못해 억울한 상황에 처해 집에 와서 울 때가 많다는 거예요.
아이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타일러도 보고 심각하게 대화도 나눠 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타고난 기질이 있는 건데 내가 괜한 헛수고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요가 참관 수업을 하러 갔다가 아이디어 하나가 뇌리를 스쳤어요.
가족끼리 모여 조용히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연습을 시켜주는 거였죠. 이런 건 얘기 나왔을 때 못을 박는 게 좋으니까 아예 '가족 힐링 시간'으로 명명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와 남편에게 "오늘부터 가족 힐링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잠들기 전 5분 동안 할테니 오후 8시40분까지 거실로 모여주세요"라고 공지했죠.
약속했던 시간에 은은한 조명을 켜고 명상음악을 틀었어요. 그리고 가족 힐링 시간의 시작을 알렸어요. 분위기를 잘 잡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진행 방법이 궁금하실 텐데 간단해요. 눈을 감고 허리를 곧게 세워 자세를 바르게 한 뒤 시작하면 돼요.
진행 권한은 그날의 힐링 선생님에게 있어요. 저는 주로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행복한 일 말하기 △오늘도 수고한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토닥이기 △내일에 임하는 각오 △명상의 시간 순서로 해요.
첫날부터 아이는 꽤나 진지하게 임했어요. 특히 그날 있었던 일 중 가장 행복한 일을 얘기하는 순서에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사줬다는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피아노 학원에서 3권으로 넘어간 뒤로 어려웠는데 처음으로 틀리지 않고 끝까지 쳐서 기뻤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역시 아이는 부모의 생각보다 더 빨리 크나 봐요.
내일의 각오를 얘기하는 순서에서도 아이는 꽤나 어른스럽게 답했어요. 'XX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겠다' 혹은 '짜증 내지 않겠다'는 식의 엄마 아빠의 간단 명료한 답과 달리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각오를 얘기하더라고요. (아이의 대답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밝히지 않을게요!ㅎㅎ)
남편이 힐링 선생님을 한 다음날 아이가 진행자로 나섰어요. 아이는 엄마 아빠의 스타일을 섞으면서 발레에서 배운 내용까지 접목시켜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항상 모기만 한 목소리로 자신 없게 말하던 아이가 진짜 선생님처럼 진행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그 뒤로도 가능한 한 매일 이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가 매일 일정을 챙기더라고요. 남편이 빠지는 날엔 저와 아이, 둘이서 하고요. 제가 없는 날은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집에 오셔도 저희 가족이 아이의 외삼촌 집에 놀러 가도 가족 힐링 시간은 계속된답니다. 이렇게 하니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어색해서 건네지 못했던 말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분위기가 주는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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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방학 기간 중 아이의 외삼촌 집에서도 가족 힐링 시간을 가졌어요. 방학기간에 함께 한 추억을 되짚어보며 잘못한 일과 잘한 일을 서로 얘기하고 새학기를 시작하는 마음가짐도 말했어요. 이 시간을 처음 가진 조카들도 진지하게 하더라고요. 각자 자신만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거 보이죠?
가족 힐링 시간을 갖기 이전과 비교해 아이는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도 조금 덜 쑥스러워 하는 것 같고요. 물론 타고난 기질이 당찬 아이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수줍음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차츰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우리 가족만의 힐링 시간이 도움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은 제가 가족 힐링 시간을 주도하는 날인데 조금 더 신박한(?) 진행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네요. ^^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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