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잠시 후 베란다 쪽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수 백번쯤 '우르르 쾅쾅'이 이어진 끝에 태평이의 울음은 잦아들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우르르 쾅쾅”을 외치며 위 아래로 바운스를 하면 태평이가 잠을 잘 잤다고 한다) 그 날 이후 나는 태평이가 자다가 깰 때마다 남편에게 안겼다. 그 전 넉 달 동안 퇴근 후 집에 와서 잠깐 아이를 보다가(영어 표현을 따라 그저 응시하기만 하던 ‘see’) 잠들고 출근하던 남편은 밤 당번을 서면서 함께 육아에 동참했다.
남편 역시 그 전에는 태평이가 ‘내 새끼’라는 생각이 딱히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내 아이’와 ‘내 새끼’라는 어감에 차이가 있듯 ‘끈끈함’을 느끼기는 어려웠다는 뜻이었을 거다. ㅎㅎ
처음엔 우는 아이를 떠맡기는 나의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늘 바가지처럼 얘기했던 ‘아이를 품지도, 낳지도, 모유수유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아이에게 엄마보다 잘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긴 게 한편으로는 반가웠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동지(?)가 있어 많은 위안이 됐단다. 당시 윗집 아이도 비슷한 시간대면 울어 댔는데 그 때면 그 집 아빠도 베란다에서 아이를 안고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고 한다. 물론 내 기억엔 없는 소리다. ㅎ)
태평이는 그렇게 젖 냄새는 나지 않지만 넓고 안정적인 아빠 품에 적응하면서 이후로도 엄마보다는 아빠 품을 더 편해 했다. 물론 남편도 아이와의 애착이 점차 강해졌고 지금 내겐 최고의 육아 동지, 아이에겐 최고의 친구가 됐다.
그 뒤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는 시간은 점차 늘었다. 밤중 수유를 뗀 이후엔 늦게 퇴근한 남편과 바통 터치를 하고 육아로 여기저기 쑤신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마사지도 받고, 친구와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모유 수유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어묵탕 집에서 국물을 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너의 남편이 원래 육아를 잘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다.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원래’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엄마들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육아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남편도 보통 남자들과 똑같다. 2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많은 결혼 초기의 남성들이 그렇겠지만)자기 방 한번 치운 적 없어 집안 일 중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육아 휴직 후 복직해 당직을 서고 있는데 전화해 세탁기를 어떻게 돌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대개 아빠들은 아이들과 친해지기 좋은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안되는 게 많은' 선생님 같은 존재인 반면 아빠는 TV도 보여주고 초콜릿도 주는 등 '되는 게 많은' 친구 같은 존재다.(마트에서 초콜릿을 사주며 엄마에겐 비밀을 약속하는 부자 혹은 부녀지간을 볼 수 있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하지만 뒤에서 적절하게 잘 조정(?)만 하면 충분히 타협이 가능한 선을 찾을 수 있다. 남편을 믿지 못해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독박 육아’를 한다고 괴로움을 호소하면 자기만 손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아빠들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터라 뭐라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ㅜㅜ)
전에 인터뷰를 한 유아 심리 정신과 의사는 “아빠와 아이가 둘이서 TV만 종일 봐도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게 아빠의 방식입니다. 그렇게라도 아빠와의 유대관계가 형성되면 그건 아주 좋은 거죠. 친해지고 나면 할 수 있는 놀이는 다양해져요. 일단 두세요. 그들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 아빠와 유대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나 사회성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한다.
아빠가 육아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족이 웃는 시간이 늘어난다. 혹 이 글을 읽는 아빠라면 용기를 가지고 육아를 '함께' 하길 권한다. 방관자 또는 조력자가 아닌 동지라는 생각으로. 회식할 때 아내의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가끔 주말 혼자 주말 일정을 한다고 해도 이전보다 아내의 바가지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가 좋다'고 할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니 '일석삼조' 아닌가!!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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