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가 그립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by 묘묘

전 직장동료 전화를 받았다.


"저 이번 달부터 여수로 옮겼어요. 사람들이 책임님 요즘 뭐 하시냐 물어서 이제 일 안 한다니 아쉬워하더라고요."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요즘 업계 정보를 나누고, 나는 그 친구를 통해 여수에 있는 지인들의 근황을 들었다. 아 그 사람 이제 차장으로 진급했어? 그분 아직 일하시는구나, 걔는 부서는 달라도 같은 회사니 자주 만나겠네, 그분 나도 알지 이제 벌써 정년이시네. 그분, 같이 일할 때 진짜 힘들었는데 그렇게 지독하시더니 임원 되시더라.



입사 후 첫 실행 프로젝트로 여수를 처음 밟았다.

이후 해외 프로젝트로 빠져 주욱 일하다 관리자급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 대타로 여수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들었다. 남들 한 일 수습에 일 순위로 투입되더니 첫 실행 프로젝트 LE(Lead Engineer)도 다른 사람의 뒷수습으로 시작했다.

오랜만의 출장에서 놀란 게, 여수가 그 사이 관광지가 되어 버렸던 것. 주변 사람들에게 와, 여수가 이제 관광지야. 예전에는 출장 갈 때 비행기에 출장 가고 오는 사람만 잔뜩이더니 이제는 여행객들이 같이 타더라. 여수시는 버스커 버스커에게 상 줘야겠다 하고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렇게 하던 일이 끝날 때 즈음, 위에서 앞으로 혹시 국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냐 물었다. 해외 프로젝트 하던 사람들이 국내 프로젝트는 낮게 보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본 거 같다.

파견 근무가 어려운 게 내 핸디캡이었기에 출장 위주의 국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이후, 퇴직 전까지 주욱 여수 일을 하고 출장을 다녔다.



사교성이 뛰어나지 않고 조직에서 위계질서에 완전 복종하지 않으며 약간의 강박이 있고 반복작업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엔지니어란 좋은 직업이다.

다른 부서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뭐라 한다고 눌릴 이유가 없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팀을 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업무 반복을 걱정할 일이 없으며, 주변인 모두가 사교성이 없으니 사교성이 없는 게 티 나지 않는다(심지어 그 조직 내에서는 나는 나름 사교성이 좋은 축에 속했다). 강박은 엔지니어의 예민함과 꼼꼼함으로 포장되어 남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업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복도 있었다. 대타로 들어간 프로젝트의 사업이 좋았다. 처음 들어가서 전임자가 가기 전까지 해놓은 삽질을 보며 간단한 일이라더니 개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삽질은 다 하셨네 싶었지만 전임자와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새파랗게 어린 LE의 말을 사업부가 받아줬다. 타 팀 LE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경험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인격적으로 업무적으로 좋은 분들이었다. 그렇게 만난 분들의 상당수를 다음 혹은 다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다시 만났다. 여수 일을 계속하다 보니 지역 협력업체와도 일했는데 담당자와 상성이 잘 맞았다.

그 무렵의 몇 년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일이 재밌던 때였다.



그만 두기 2년 정도 전부터 회사는 사람을 정리했고 나의 좋은 파트너들은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뜨거나 다른 부문으로 이동되었다. 몇 년을 같이 일하면서 발주처에 따라,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지 서로 척척 의견이 맞는 사람들이었다.

그 후로 업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라가 망조가 들면 딱 이런 꼴이겠다 싶었다. 정리하려면 나도 하지 왜 나만 남겼니.


첫 LE를 할 때 친한 분과 술자리에서 말했다.

"엔지니어들은 어느 정도 제 멋에 살잖아요. 저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회사가 내게 주는 이상으로 돈을 벌어주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전 제가 쓸모없어지면 더 일 못할 거 같아요."

그분은 그 말을 듣고 "야, 너 너무 그러면 안 돼, 그건 아니야. 오래 일해야지." 하셨고, 나는 "정년까지 벌어야죠. 애가 둘인데." 했다.

나는 퇴직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나는 당연히 정년까지 일할 거라 생각했다. 퇴직 사유도 이직이나 회사의 권유가 아닌 개인 사유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한 말이 맞았다. 나는 내가 쓸모없어지면 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게 비록 내가 옳은 말을 해도 그걸 듣는 사람이 없어 쓸모없어지는 거라 해도.



통화 후 며칠간, 여수가 생각났다.

출근 전 산책 가던 바다 앞 도로 (아침잠이 많은데 출장 가면 몇 시에 자든 항상 새벽에 눈이 떠졌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던 여수 공항 커피점

공항 2층의, 이건 누가 사는 건가 궁금했던 유화들.

아침에 먹던 금풍의 대구지리. 겨울에 먹은 굴찜, 여름에 먹은 하모.

그리고 여수산단.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그리운 건 여수일까 그 시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