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고등 둘과 한 학기를 보내다
둘째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고등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둘째가 첫째와 같은 고등학교 입학하니 0에서 시작은 아니라 괜찮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지만,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째. 애는 고작 2살 터울인데 입시 제도가 바뀌었다.
수능이 바뀌고,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서 일부 절대평가였던 과목들까지 상대평가로 바뀌었으며, 대학들은 2028년 입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는지 천천히 발표했다.
2028년 입시인데 뭘 벌써 신경 쓰나 싶겠지만 과목 선택은 1학년에 해야 하고 듣고 싶은 과목 위주로 선택해 실컷 들은 후 고3이 되어서야 '아니 미적2를 안 들으면 지원해도 합격 확률이 0프로인 거야?'라거나, '물리를 2개 이상 들어야 했네?' 하면 이미 늦은 거니 부모가 공부를 하는 수밖에.
둘째. 입시를 치루는 아이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우리집 삼님(고3)은 조용한 ADHD라 본인이 하기 싫으면 대학 수업도 조용히 깔아뭉게다 학사경고를 받고서야 사실 나 공부 안 했어 고백할 아이라 과 선택이 진심 중요한 아이다 (일단 합격하고 복수전공이나 전과 등을 하는 건 싫은 건 죽어도 안 하고 깔아뭉게는 ADHD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에 대학전형과 과를 찾아보는 귀찮은 일 따위도 역시 마음 속에 부담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뭉게 버리니 학교별 전형을 보면서 이런 과는 어떨까 저런 과는 어떨까 애의 의사를 묻게 된다. 9월이면 원서를 써야 하지 않나.
여기에 3월 모고를 좀 잘 보고 헤실헤실 풀어지더니 귀찮은 공부 따위는 묻어버리고 (고3이 되어도 했어, 나 했어, 거의 다 했어 거짓말을 보게 될 줄이야) 빈둥거리다 6모를 보고 본인도 화들짝 놀랄 성적을 받았다 (사실 난 안 놀랐다. 했다 하는데 거짓말 같더라). 이제 열심히 할 거야!를 외치는데 ADHD의 특징이 또 작심3일이 아닌가. 그나마 N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작심3일 ADHD가 N수가 웬 말이냐)은 둘이 일치하고, 6모 성적을 본 삼님이 이러다 집에서 통학이 불가능한 머나먼 학교로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를 깨닫고 약간은 각성해서 다행이다. (독립을 시키더라도 대학 졸업 전까지 일상을 사는 방법 정도라도 가르치고 내보내야지 지금 따로 살았다가는 대충 먹고 안 치우고 공부 안 하고 학사경고 받는 와중에 사는 집이 쓰레기로 방바닥이 꺼져 뉴스라도 탈까 무섭다.)
셋째. 삼님은 1학년 1학기가 끝날 즈음에 아 얘는 수시는 글렀구나 내심 체념을 했기에 세특 등에 신경을 그닥 쓰지 않았는데 일님(고1)은 나름 준수한(?) 내신을 받기에 삼님과는 달라 수행과 세특을 신경써야 했고, 아이는 매 수행과 세특으로 폭주하는 스트레스를 내게 하소연했다. 거기에 엄벙덤벙 성격 덕에 다 해놓고 과제를 가져가지 않거나, 검사받을 노트를 안 가져가는 등의 문제로 "엄마, 미안한데 학교에 뭐 좀 갖다줄 수 있어?"하고 호출하기 일쑤였는데 "야! 그런 거 안 챙겨서 받는 불이익은 너가 감당해. 나는 그런 심부름 안 해!"라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어도 무한경쟁사회 학군지 고등학교에서 수행 1점 감점은 내신 1등급이 굴러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의 압박에 굴복해 결국은 갖다줬다.
남들은 위기의 순간에 잠을 안 자면서 수행을 준비하고 세특을 준비한단다. 우리집 일님은 그러면 안 된다. ADHD는 참으로 섬세한 질병이라,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약효에 문제가 발생하고 감정 통제에 문제가 생긴다. 거기에 일님은 약간의 강박과 우울을 가졌는데 배고프면 감정의 기복이 널뛰기에 배가 많이 고픈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일님의 섬세한 미각은 같은 음식을 자주 먹거나, 밥이 아닌 빵 또는 면을 주면 주어진 식사에 흥미를 잃고 위장의 크기를 자동으로 줄여버리기에, 도대체 얘를 뭘 몇 시에 먹여야 오늘도 무사히 널뛰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루를 잘 보낼 것인가 늘 고민한다.
그 결과 나는 엄청난 잔소리꾼이 되어, 아침에는 15분에 걸쳐 두 아이를 깨우고, 애들이 일어나면 각자 먹을 약을 챙긴 후 약 먹어라, 약 먹어라, 잊지 말고 먹어라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반복재생하고 (그래도 먹는 걸 잊는 애를 현관문에서 붙잡아 먹여 보낼 때도 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내내 1, 2분 간격으로 "지금 7시 OO분이야. 얼른 챙겨. 늦는다" 소리를 지르고, 아슬아슬 빠듯하게 우당탕탕 뛰어내려오는 애들 손에 양말과 각자의 핸드폰을 쥐어준다.
각자의 일정에 특이사항도 체크해야 한다. 애들은 플래너를 쓰지 않는다. 하루 종일 분신처럼 끼고 사는 핸프폰의 달력에 중요일정이라도 입력하고 다니면 안 되는걸까. 내가 자꾸 일정을 챙겨주니 스스로 안 챙기는 건지, 애들이 안 챙겨서 내가 자꾸 다 챙기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현재 나는 고등학생 2명의 스케쥴을 담당하는 비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원 시간, 강의실, 수행 및 세특 일정, 학교 프로그램 신청 일시 체크는 기본이고 병원 및 치과 예약 및 방문 동행 등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정을 관리한다.
감정이 출렁출렁하는 일님의 정신건강도 신경써야 한다. 평소에는 그저 투덜투덜 내지는 우울하다는 하소연 정도로 그치는 일님이 가끔 감정이 격하게 폭발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때의 공통점은 대부분 잠을 많이 못 자거나 밥을 제대로 안 먹어 배가 고픈 날이란 거다. 일님은 밖에서 먹는 밥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도 자주 봤다 싶으면 쉽게 물린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바로 가는 날은 끊임없이 일님에게 너는 밥을 안 먹으면 감정이 폭발하니 밥을 먹어, 밥을 먹어, 삼각김밥 말고 밥을 먹어 상기시킨다.
종종 숙제를 몰래 묻어두고 멍 때리는 삼님을 가끔 협박한다. 너 엄마가 모르는 줄 알지. 사실 학원에서 다 보내줘서 나 너 이번 주 지난 주 숙제 제대로 안 한 거 다 알고 있어. 자꾸 숙제 찔끔찔끔 하면서 다 한 척 하고 놀고 다니면 아빠께 말씀드리고 다음 달 학원 등록 없다. 대학 안 가면 아쉬운 거 너지 내가 아님.
밤이 되면 다시 잔소리 모드가 켜지고, 빨리 자라 빨리 자라 제발 이제는 자라, 잠 안 자면 하루 생활이 안 되는 청소년들이 제발 자라, 나 화나기 전에 자라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반복한다. 잠투정하는 신생아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왜 먹고 자는 게 잔소리의 5할은 차지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명회 시즌에는 2, 3일에 한 번씩 설명회를 들으러 나가고, 짬짬이 대학들의 모집요강을 출력해 제본한 후 읽고, 주기적으로 결제일이 제각각인 학원비 결제 계획을 짠다 (학원비 할인카드들의 페이백을 알뜰하게 긁어쓰고 싶어서). 하루에 수 십개씩 날아오는 학원들의 홍보 문자를 정리하고, 학원 다닐 과목이 뭔지 애들과 논의해 정하고 학원 수업 시간표를 짠다.
종종 일님의 수행 혹은 세특 관련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한다. 일님은 종종 너무도 원대한 계획을 세워서 나를 경악하게 한다 (그런데 그 원대한 계획이 아무리 들어도 선생님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는 게 문제다). 꼭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하냐는 질문에 뭔가 이상한 걸 깨닫고 스스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있지만 왜, 나는 이거 재밌는데 그냥 할 거다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점을 들어도 재밌으니 해야 한다 생각이 들면 해야지 어쩌겠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주를 이야기하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지.
종종 결과물 코멘트를 부탁하는데, 말을 안 하면 안 하지 하면 사탕발림은 못 하는 내 특성 때문에 처음에는 일님이 울기 직전까지 가곤 했다 (주제가 뭔지 모르겠다, 목차는 짠 거 맞니, 왜 이렇게 내용이 이리 저리 튀니, 진짜 열심히 한 거 아는데 ppt에 그 과정 다 생략하니 한 거 없이 대충 만든 거 같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갑자기 논리가 비약하니 이해가 안 가네 등등). 이제는 아 역시 엄마는 까다로워 하고 고치든지 말든지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
중간고사, 수행, 기말고사, 세특(일님) 시즌을 거쳐 다음 주부터 방학이다.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