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모두 네 글자 - ADHD - 때문이다
우리 집 고딩은 곧잘 신세한탄을 한다. 엄마 나 왜 이게 잘 안 되지? 엄마 나 왜 이렇지? 엄마 나 왜 그랬을까?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네 글자라 그래."
"아니 엄마는 왜 툭하면 네 글자 타령이야? 만물 네 글자 설이야?"
첫째의 조용한 ADHD 진단 후 둘째가 ADHD 진단을 연이어 받으면서 ADHD 관련 각종 기사와 글들을 섭렵하던 중, 우리 가족의 특성 중 상당수가 ADHD의 특징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의 공통점이 보이면 '공통점+ADHD' 키워드로 검색해 보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대부분 연관 기사 혹은 관련 글이 뜨는 걸 보며 살짝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 예전부터 느꼈지만, ADHD가 이 정도까지 사람의 성향 혹은 정체성(이라 생각하던 것들)에 이 정도의 영향을 미칠 줄이야.
안면실인증, 물건 분실, 건망증, 강박, 우울, 루틴을 세우는 어려움, 정리정돈의 어려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회피, 하는 일에 쉽게 질리는 점, 업무의 시작보다 마무리가 어려운 점, 형편없는 운동신경 (특히 구기종목), 운전의 어려움, 방향치, 수면장애, 고집, 눈치 없음, 대화 도중 상대방의 말 끊기, 낮은 문해력, 충동적인 결정, 카페인 중독.
"엄마 생각에 엄마도 네 글자야?"
"진단 안 받았지만 아마도?"
"그런데 왜 엄마는 정식으로 진단 안 받아?"
"강박과 마인드컨트롤과 체념으로 어느 정도 극복하고 사니까? 가서 진단받아도 약 먹을 거도 아니고 이대로 살 건데 이 나이에 굳이?"
네 엄마 왜 진단 안 받냐는 걱정하기 전에 약 먹는 너는 왜 생활 습관 못 바꾸나 고민부터 하라는 잔소리에, 애는 "아니 모든 걸 다 ADHD와 연결 짓지 말라니까? 요즘 애들은 다 그래. 다 산만하고 다 정리 못한다고. 내가 ADHD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강변한다.
"자꾸 다른 애들 이야기하면서 회피하지 말라니까?"
"아니, 엄마야말로 자꾸 만물 네 글자설로 모든 문제를 네 글자와 연관 짓지 말라니까? 네 글자 아니어도 그런 애들 요즘 많다고."
"모든 면에서 너만큼 심한 애가 있으면 걔도 병원 가면 네 글자 판정받겠지. 그런 애는 네 글자가 아닌 게 아니라 자기가 네 글자인 걸 모르는 네 글자인 거지."
"아 진짜!"
그 와중에 예비 대학생은, '맞아 너 진짜 충동성 끝판왕이지 히히' 추임새 넣고 고딩이는 '웃기네, 그러는 언니도 네 글자면서 뭔 소리 하는 거야' 하며 타박을 하며 그 타박을 옆에서 듣는 나는 '너랑 언니랑 같냐, 너네 언니는 조용한 네 글자라 충동성은 없어, 그냥 조용히 멍 때리다 전원이 꺼지지.' 라 사실관계를 말해준다. 전원이 꺼지는 게 나은 건지 충동성 끝판왕이 나은 건지 토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편은 소리없이 TV를 튼지 30초도 안 되어 "TV 보는 중에는 보기 싫으면 조용히 방에 가서 떠들던가 해야지." 한 마디 던진다.
"우리가 먼저 이야기 중이었고 자기 TV 튼지 몇 초 안됐는데?"
"아빠 늘 뭔가 뜬금없고 논리도 없어. 아무래도 아빠도 네 글자...?"
네 글자 가족의 흔한 저녁 식사 시간은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