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자 아닌 척 하기: ADHD 마스킹.
첫째는 지금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에 집에 왔다 간다.
애 고3에 매일 생각한 건, 밖에 내놓기 부끄러워서라도 내가 얘들은 대학까지 끼고 살면서 사람 만들고 만다는 거였다. 하기 싫은 건 미루고 뭉개고 도피하는 애들을 아침에 깨우고 약 먹게 하고 밤에 제시간에 재우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내가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거도 아닌데 먹고 자는 잔소리를 매일 쉴 새 없이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내놓고 살면 매일 새벽까지 게임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수업은 째고 하루 종일 멍 때리는 폐인생활을 하다 학사경고 몇 회 받는 게 아닌가 싶어 어떻게든 통학거리로 보내고 만다 결심했다.
그러나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통학 가능 학교와 통학 불가능 학교 중 선택의 순간이 오자, 애와 나의 의견은 통학 불가능 학교로 일치했다. 원서를 쓰는 날까지 진로를 결정 못 해 지망학과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꾸몄더니, 붙은 곳 중 집에서 통학 가능한 곳은 아무리 봐도 적성이 맞지 않아 보였다. 원서를 쓸 때까지 할 수 있다 원서 쓴다 나는 집에서 통학이 최우선이다 박박 우긴 본인도, 막상 합격하고 나니 마음이 바뀌어 기숙사를 가더라도 마음이 더 끌리는 곳에 가겠다며 나를 회유했다.
"내가 집에서는 이래도,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나름 깔끔하게 지낸단 말야. 수학여행 가서도 안 어지르고 잘 지냈거든?"
사회적 지위와 체면은 매우 중요하지. 인정.
집에서 빈둥거리다 집 앞 편의점이라도 가려면 용모단정 의관정제를 실천하고 나가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자주 한 말이 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그냥은 못 나가지?"
(예전 이야기다. 요즘은 트레이닝복으로 외출하는 게 일상화된 세상이라 대충 나가도 티가 안 난다. 만세)
내게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장치들이 있다. 그중 가장 잘 써먹은 게 업무능력 관련 강박과, 사회성 관련 모방과 커뮤니케이션 루틴 사용이다. (무직인 지금은 둘 다 그닥 써먹을 일이 없어 게으르고 늘어진 채로 내 맘대로 살고 있다)
고기능 ADHD 관련 문헌들은 이러한 노력들을 'ADHD 마스킹'이라 칭한다. 'ADHD 마스킹'에 대한 제미나이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ADHD 마스킹(Masking)은 ADHD 증상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거나 타인에게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특성을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숨기거나 억제하는 적응 전략을 의미합니다.
마스킹은 겉으로 보기에 사회생활을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한 심리적 비용이 따릅니다.
1. 주요 마스킹 행동 (예시)
과도한 리액션과 집중하는 척: 대화의 흐름을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는 등 공감하는 연기를 합니다.
강박적인 확인과 기록: 건망증이나 실수를 피하려고 메모를 수십 번 확인하거나, 약속 시간보다 지나치게 일찍 도착하여 대기합니다.
감정 억제: 충동적인 발언이나 감정 폭발을 막기 위해 극도로 조용히 있거나 본인의 의견을 내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추구: '부주의하다'는 평가를 듣지 않으려고 하나의 과제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완벽하게 끝내려 합니다.
2. 마스킹이 발생하는 이유
보통 어린 시절부터 "왜 이렇게 산만하니?", "좀 진득하게 앉아 있어 봐"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형성됩니다. 사회적 거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학습하여 연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성을 커버하기 위한 내 도구 중 하나는 '매일' 각종 커뮤니티와 카페의 글들을 모니터링하는 거였다. 내 관심사와 별개로 대중들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드라마를 보지 않음에도 인기 드라마의 플롯, 주인공, 그날의 하일라이트를 체크했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음에도 각종 큰 경기의 결과들 및 누가 득점을 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모니터링은 매일의 스몰토킹에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적절한 소재를 던지고, 상대편의 이야기에 적절한 리액션을 주는 것만으로 어색하지 않은 대화는 가능하니까. 인위적이지 않게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상대편의 관심사를 상기시킨 후 적절한 리액션을 하는 식으로.
끊임없는 피드백과 벤치마킹도 기본이었다. 대화 중 찜찜한 부분은 복기 후 다음에 같은 상황이면 이렇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 중 본받고 싶은 부분은 (주로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내심 갈팡질팡할 때 다른 사람이 보여준 매끄러운 언행들) 다시 복기하고 기억에 저장했다. 나는 내 언행을 늘 검열했고 보정했으며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업무의 완벽성을 높이고 사회성을 높여 원만한 사회생활을 가능하다면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는 부작용이 있다. 번아웃과 감정기복.
업무든 대인관계든 사소한 것까지 반복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지고 오 이게 되네 괜찮네 하며 텐션이 높아지다 사소한 걸로 아니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짜증이 나면서 바닥으로 내리 꽂힌다. 그런데 그 내리 꽂히는 이유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 중 누가 이 시스템을 이해하겠어?
그나마 나이 들면서 스스로에 너그러워지고 일부 체념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다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내 경험은 애들이(특히 둘째)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 도움이 된다. 애들이 뭔 말을 할 때 "나도 그런 적 있는데..."로 말을 시작하는 게, "죽었다 깨도 이해를 못 하겠네. 도대체 왜 그러는데?"보다는 낫지 않은가.
결국 기숙사에 간 첫째는 나름 주변 정리하고 수업도 제시간에 들어가며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너무도 멀쩡하게 살아서, 너 이제 좀 있으면 주말에도 안 오는 거 아니냐 하니 절대 아니라 펄쩍 뛰었다.
"집이 최고라고! 밖에서는 긴장한단 말야.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제일 좋다고! 2학기에는 시간표 잘 짜서 집에 있는 시간 더 늘릴 거다!"
그래서 여전히 집에 오면 뒹굴 거리고 침대에 누워 멍 때리다 고양이와 놀고 짧은 주말 동안 바닥에 뭔가를 늘어놓고 나가는 첫째.
사람이 이렇게까지 산만할 수 있는지 늘 색다른 감동을 주면서 "밖에서는 안 그렇다니까? 나 정도면 평균이다!"를 외치는 둘째.
최소한 집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 덕에 집은 늘 사람을 들이려면 대청소를 해야 할 거 같은 상태를 유지 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