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독서는 쉽지 않다 요즘은 더더욱
어릴 적 나는 활자중독자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읽을 수 없는 한자들을 건너뛰며 조간신문을 읽었고, 어린이 문학전집, 청소년 문학전집, 각종 백과사전, 국어사전, 한국문학전집, 셰익스피어 전집,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 <어깨동무>, 만화잡지 <보물섬>, 영화 잡지 <스크린>, 패션잡지 <멋>... 커가면서 집 앞 중고책 파는 곳에서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샘이 싶은 물> 사서 모았고, 언니가 구독하는 패션잡지 <쎄씨>를 읽었으며 아가사 크리스티를 사 모았다.
다독이 아닌 활자중독증이라 칭한 건 타겟 연령층과 취향에 상관없이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읽었기 때문인데, 동물을 키우지 않음에도 <취미백과사전>에서 금붕어 기르기 및 토끼 키우는 법을 읽고, 낚시를 평생 가지 않았음에도 민물낚시와 바다낚시에 대한 내용들을 읽었으며, <세계인명사전>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일생과 업적들을 순차적으로 읽고, 딱히 패션에 관심이 없음에도 집에 있는 잡지란 이유로 올해의 패션이 어떤지부터 각종 화장품 리뷰, 애독자 엽서까지 전 페이지를 읽었다. 문학 작품도 예외는 아니어서 읽고 좋아서 다시 읽은 책들도 있지만 전집 번호 순서대로 빠지지 않고 읽겠다는 마음으로 읽은 책들도 많아서 성인이 된 후 저런 격정적이거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민을 그 나이에 읽는데 왜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나 의아한 적도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우리집 두 애의 국어 실력을 보면서 좌절해서다. 얘들은 왜 국어를 저리도 못하나. 얘들도 아무 거나 읽게 뒀어야 하나)
그럼에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손을 대지 못하는 부류의 책이 있다. 바로 대하소설.
동일한 인물들로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면 권수에 관계없이 읽을 수 있는데,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하소설류는 내게는 너무도 어렵다. 장편소설을 읽으면 보통 빠르게 한 번 읽은 후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발췌하며 읽고, 전체를 다시 읽는 경우가 많은데 대하소설류는 '빠르게 읽기'부터가 난관이라서일까. 완독에 시간이 걸리면 흐름이 끊어지고 관심이 멀어져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
거기에 추가로, 등장인물이 많아질수록 등장인물 이름 외우기가 힘들기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짧은 이야기들은 나오는 인물이 한정적이지만 글이 길어질수록 인물이 많아지고, 한국인의 경우 성 한 글자 이름 두 글자에 가끔 돌림자를 쓰는 등장인물들까지 있으니 뭔가 엇비슷하지 않은가. 아무리 이름을 기억 못 해도 갠달프와 사루만을 헛갈릴 수는 없으나 최윤국과 최환국은 글자 한 끗 차이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은 읽기가 너무도 힘들다. 이름들이 왜 이렇게 다 비슷하고 애칭들이 많은지)
예전에는 활자를 보고 싶으면 주변에 있는 책이나 잡지, 신문 등 외에는 읽을만한 게 없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만 열면 무한한 데이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도파민 중독 시대에 맞게 모두 짧은 분량의 이야기들이다. 소설들도 예외가 아니니, 1000편 이상 연재한 웹소설이라 해도 몇 편마다 기승전결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기에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짧은 이야기를 연속으로 읽는 것과 그닥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 호흡이 긴 글을 읽기가 예전보다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5권 정도가 최대치였다면 지금은 장편 1권도 살짝 부담되는 심각한 수준 (앞에 말한 이유로 웹소설류는 제외). 활자중독자. 이래도 되는가.
문학이 특히 힘든데 비문학은 챕터별로 내용이 분류되어 결론까지의 긴 여정이 부담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이게 노화에 따른 문제인지 도파민 중독으로 하루에도 오만 가지의 독립된 정보들을 섭렵 가능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살아서인지 알 수가 없다.
두뇌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책을 읽기로 했다. 몇 가지 시도를 해 본 결과 줄거리와 기승전결이 뚜렷한 고전소설들이 그나마 낫다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한 달에 고전 최소 1권 읽기를 목표로 하려 한다. (웹소설 끊기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에는 너무도 도파민을 지향주의다)
도파민에 찌든 나 자신.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