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든 진단과 치료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빠르다.
다음 날 다시 찾은 A병원. 다행히 CT와 조직검사 동시에 가능하다고 했나 봐. 근데 내일 당장은 안된다고 해서 이틀 뒤로 예약을 잡아주셨대. 난 앞으로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어. 자세한 건 10일쯤 후에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가닥이 잡히겠지만, 비강 종양은 악성일 확률이 90%라서 방사선 치료는 거의 확정인 것 같더라. 외과적인 수술로 떼내는 건 힘들 거래. 네 코 안에 자리 잡은 종양이 너무 커서.
그리고 그 와중에 안 좋은 소식 하나 더. 네가 식도관을 토해내서 뺐대. 거슬렸나 봐.
"코 속이 보이는 곳도 아니고 저였어도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에, 맞아. 지금이라도 찾은 게 어디야. 방사선 치료 하면 되잖아. 괜찮아. 했다가도, 네가 콧물이 약하게 나던 그때 바로, 보호자의 본능 같은 걸 발휘해서 CT를 바로 찍어봤다면 그 망할 종양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할 때 바로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지. 선생님조차도 눈치채기 힘들었을 거라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게다가 폐가 안 좋은데, 최종보스가 생각지도 못하게 코에 숨어있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냐고! 내가 흡연자였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생각하면서 화가 나서 울었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진짜로 나에게 일어난 거니까.
"모든 진단은 그때가 제일 빠른 거예요. 치료도 시작하는 그 순간이 제일 빠른 거고요. 어찌 됐든 지금 이 순간 이후로는 더 나빠지기만 할 거니까요."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힘이 되더라. 끊임없이 자책하는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신 느낌이랄까.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아. 수의사는 동물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걸.
"이제 한 달 동안은 엄청 힘드실 거예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10일 정도 걸리기도 하고, 앞으로 치료방법을 어떻게 잡을지도 상담해야 하거든요. 또 한 달 동안 못 버티는 친구들이 있기도 해요. 한동안은 가시밭길일 텐데, 그 가시밭길을 이제... 저와 함께 걸으셔야 합니다!"
가시밭길을 같이 걷자니.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지. 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간다면 너도, 나도, 그 힘든 과정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어. CT와 조직검사는 A병원에서 B병원으로 의뢰한 셈이니 CT 판독이나 조직검사 결과는 A병원에서 상담받을 수 있었어.
근데 문제는, 네가 방사선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그러려면 방사선 치료장비가 있는 B병원에서 진행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는 거야. 아쉬웠지만 어쩌겠니. 너는 일단 이틀 뒤 아침에 A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했어.
"선생님, 가기 전에 몽냥이 한번 보고 가도 돼요?"
"그럼요. 두 번 세 번 보고 가셔도 돼요."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찾은 입원실.
"몽냥아~"
네 입원칸의 문을 열고 내가 손을 내밀자 네가 음소거 야옹으로 대답했어. 음소거 야옹. 네가 자거나 조용히 식빵 굽고 있을 때, 내가 "몽냥?"하고 부르면 대답은 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걸 난 '음소거 야옹'이라고 불렀었잖아. 너무 귀여워서 원랜 그 소리를 엄청 좋아하지만 지금은 네 목소리가 꺼져가는 것처럼 들려서 또 울음이 터져버렸어.
"몽냥아.... 미안해.."
또 엉엉 울기 시작한 나를 두고 선생님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셨고, 나는 그렇게 네 온기를 느끼며 하염없이 너를 쓰다듬었어. 내가 쓰다듬는 손길에 너는 골골송을 불러주더라.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 나는 네가 살아있단 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서 입원실에 머리를 넣고 네 몸에 귀를 가만히 대고 눈을 감았어.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소중한 나의 첫 고양이야.. 내가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