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종양이라고요?
결국 약을 새로 받아온 지 3일 만에 나는 병원에 전화를 했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번에 몽냥이 봐주신 선생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몽냥이가 조금 나아진 것 같긴한데, 코막힌 소리는 여전히 나요. 그리고 3일째 못 먹어서 제가 츄르도 억지로 먹였어요.
"음…그럼 병원에 데려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지방간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내일 오전에 오실 수 있으실까요? 근데 내일은 제가 휴무라 저번에 몽슈 봐주셨던 선생님께서 몽냥이 봐 주실 거에요.“
네 동생 몽슈를 살려주셨던 분이라면 더 믿을 수 있지. 그렇게 나는 너를 데리고 날이 밝자마자 다시 A병원으로 달려갔고 엑스레이 촬영에 초음파 검사도 진행했어.
"엑스레이랑 초음파 보니까 다른 병원에서 보신대로 폐가 많이 안좋아요. 숨을 쉬기 힘들어서 그런지 체내 이산화탄소 수치도 높고요. 급성염증수치는 낮아서 폐렴일 가능성은 낮아 보이네요. 폐렴때문에 코가 막혔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코는 왜 막힌 거에요?“
“축농증이나 비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종양때문일 수도 있어요. 폐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숨을 못쉬어서 폐가 안좋아진건지, 아님 폐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건지…일단 입원해서 축농증이나 비염에 준하는 치료를 해보겠습니다."
종양? 에이 무슨 종양이야... 종양이 생기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입원 치료받으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어.
그렇게 너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이틀 동안 산소방에서 치료를 받으며 네 컨디션이 회복되길 기다렸어.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야 마취가 가능하고, 마취가 되어야 코 세척이 가능하니까.
그렇게 네가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 코 세척이 진행됐어. 마취한 겸 식도관도 장착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고. 네가 식욕이 없으니 억지로 먹이기라도 해야 하니까 말이야. 원래 코 쪽으로 삽관하는데, 너는 코가 막혀있으니 목에다가 연결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식도에… 구멍을…? 하는 생각에 무섭더라.
“혹시… 많이 아프거나 하진 않나요? 아님 그냥 제가 강제 급여하면 안 돼요?”
“괜찮아요. 꽂을 때만 아플 텐데 어차피 마취 중에 할 거니까요. 그리고 강제급여하는 건 강아지 같은 경우엔 괜찮은데, 고양이는 강제급여를 할수록 식욕이 더 떨어질 거예요. “
식욕이 더 떨어진다니…그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강제급여보단 그냥 식도관으로 내가 유동식을 짜주는 게 편하기도 하겠지? 나는 알겠다고 했어.
"보호자님, 코 세척 다 끝났습니다. 왼쪽 코만 꽉 막혀있더라고요. 좀 있다 오시면 상담 진행할게요."
'코가 막혀있다'는 것의 의미를 단순히 콧물로만 막혀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한 나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널 잠깐 보기 위해 찾은 입원실. 내가 불러도 답이 없더라. 꼬리는 살짝 흔들긴 하는데..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조금만 있다가 나왔어. 그리고 시작된 선생님과의 상담.
“우선 피검사상 숨을 못 쉴때 나타나는 수치들은 거의 다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폐가 안 좋았던건 그냥 숨을 못 쉬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코 세척하고 찍은 사진인데요..”
와. 콧물이랑 피덩어리가 나왔네? 근데 네가 그렇게 숨을 못 쉴 정도로 막혀있었던 것 치고는 나온 양이 적더라고. 이상한데..?
"제 생각에는..."
말끝을 흐리는 수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난 불안하게 바라보았어.
".... 종양 같아요."
"... 종양이요? 왜요?"
"코 세척 삽관할 때 엄청 빡빡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랬던 것치곤 세척으로 빠져나온 양도 적고... 게다가 눈 쪽을 만져보니 왼쪽 눈만 조금 튀어나와 있어요. 그럼 비강 쪽 코 뼈도 녹거나 해서 종양이 눈 쪽을 건드리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왼쪽 눈에서만 계속 눈물이 났던거구요."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지. 갑자기 종양이라니? 것도 폐가 아니고 코에? 내 고양이가 종양이라니? 동물 농장에서나 볼 법했던 이야기가, 내 일이 되다니? 이게 말이 돼? 난 담배도 안 피우는데? 청소도 열심히 하는데? 왜 네가 종양이야? 이게 말이 돼?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결국 선생님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어. 눈물 콧물 다 빼가며 우는 나에게 수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셨지.
"일단 CT 찍고 조직검사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여긴 장비가 없어서 CT와 조직검사 같이 진행하려면 B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어요. 내일 예약되는지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첫인상부터 강렬하게 부정적으로 박혀버린 그 병원에 또다시 너를 맡겨야 한다니... 그런데 어쩌겠어. 거기밖에 없다잖아. 나는 이제 정말 선택권이 없었어. 그나마 너를 살릴 가능성이 있는 그곳을 믿어보는 것 말고는.
입원해 있는 너를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또다시 펑펑 울었어. 아직 너한테 못해준 게 많은데... 너를 만난 게 아직도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10년 전 대학교 2학년일 때의 11월. 용돈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어보겠다며 시작한 중학생 과외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이었어. 그거 알아? 10년 전쯤부터야 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거. 예전엔 고양이를 귀여워한다기보단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어. 나도 그때 SNS에서 고양이 관련 영상을 얼마나 많이 봤던지,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만 키워봐서 고양이에겐 무관심했던 나조차도 '아, 고양이 키우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니까.
자취방을 향해 걸어가던 나는 낙엽이 다 진 은행나무 밑동에 있는 치즈냥이 한 마리를 발견했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치즈냥이를 빤히 쳐다보았지. 집 갈 때 몇 번 봤던 애 같은데. 저번에 한식집 앞에서 생선뼈 열심히 먹던 그 친구 아닌가? 어딘가 낯이 익은 그 치즈냥이는 밑동을 힘 있게 긁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세웠어.
"이리 와!"
네가 놀라서 도망갈까 봐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쭈그리고 앉은 내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치즈냥이는 예쁜 울음소리를 내며 내 손 쪽으로 다가왔어. 그때가 처음이었지. 내가 고양이라는 생명체를 쓰다듬어본 게. 나는 온몸에 찌르르 전율이 돋는 느낌이었어. 치즈냥이는 내가 영상으로만 봤던 골골 소리를 내며 내 손길을 즐기더니, 내가 코트를 입은 채로 쭈그리고 앉아서 엉덩이 밑쪽에 생긴 공간으로 쏙 들어가 앉더라. 코트 때문에 찬바람도 안 들어오겠다, 아늑해 보였나 봐.
나는 그 치즈냥이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어. 그래서 머릿속으로 내 자취방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내 모습을 열심히 상상해 보았어. 될까? 될 거 같은데?
"야. 너는 나랑 같이 가야겠다."
그렇게 홀린 듯이 말한 나는 그 치즈냥이를 안아 들었어. 근데 그 고양이도 내 말을 알아들었나 봐. 처음 보는 사람이 안았는데도 저항 하나 없더라니까!
그렇게 치즈냥이를 품에 안아 들고 집으로 향해 신나게 걸어가는 길. 날 마중 나와 준 친구가 놀라면서 뭐라는 줄 알아? 자기가 어제 꿈을 꿨대. 내가 매일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그런 거일진 몰라도, 자기가 어제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와서 키우는 꿈을 꿨다고.
그때부터 그 치즈냥이는 몽냥이가 되었어. 꿈 夢(몽) 자에 고양(냥)이의 냥을 합쳐서. 몽냥.
어때. 너무 완벽한 작명 아니니? 너랑 나는 만날 운명이었던 거야!
너라는 생명체를 만나고 나서부터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어.
근데… 네가 아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