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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양이에게(5)

5.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야?

by 짱몽

"안녕하세요 몽냥이 12시에 예약했어요."

"네 접수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잠깐이랬지 않나? 게다가 난 11시 59분에 도착했는데? 20분이 지나서야 돌아온 테크니션은 담당 선생님의 전 일정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했어.


"언제쯤 오세요? 저 몽냥이 맡겨놓고 회사 들어가 봐야 해요."

"최소 몇 시쯤 가셔야 하나요?"

"최소 1시요."


테크니션은 선생님께 전달드리겠다며 사라졌지. 그렇게 또 시작된 기다림. 결국 나는 수의사를 12시 45분에야 만날 수 있었어. 기초적인 문답이 이뤄졌지. 오늘 진행할 검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어.


“오늘은 우선 피검사부터 진행할 거예요. 마취할 만한 상태인지 체크해야 돼서요.”

“피검사는 A병원에서 다 끝내고 왔는데요? “

“아 그래요? 한번 볼게요.”


내 말에 그제야 수의사는 A병원에서 보낸 피검사 자료를 바로 켜더니 “마취해도 괜찮겠네요. 추가 검사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라고 했어. 자료를 바로 켜는 것 보니 검사 결과가 왔는지 몰랐던 것 같진 않은 데 대체 뭐지..? 겨우 억누르고 왔던 부정적인 첫인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래도 식도관 삽입하기로 한 건 안 잊었겠지?


그리고 수의사가 하는 말이, 코 내부에 바늘을 넣어서 조직을 채취하는 거라 코피가 많이 날 거고, 조직 채취 때문에 부종이 생겨서 사망할 가능성도 있대. 근데... 수의사가 마음이 급한 건지 진짜 바쁜 건지 모르겠는데, 무슨 말이 그리 빠를까? 난 솔직히 설명하는 거 30프로 정도는 못 알아 들었다? 랩 하는 줄 알았어.


그 와중에도 내가 정확히 들은 건 사망 위험이었어. 머리가 복잡해졌지. 그래도 조직 채취를 안 할 순 없는 거잖아. 5분 만에 상담이 끝나고, 나는 바로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또 잠시 기다리라네?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또 15분이 지났어. 결국 나는 처치실에서 나온 테크니션을 붙잡고 물어봤어.


"저, 선생님이 기다리라고 하시던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피검사 결과 때문에 그러신 것 같은데... 잠시만요."

엥 피검사? 뭔 피검사. 피검사 안 하기로 했었는데?


"확인해 보니까 수납만 하시면 된다고 하네요. 수납하고 진료동의서 작성할게요."


아니 그럼 지금 고작 수납을 이만큼 기다린 거야? 수납하고 가면 된다고 수의사가 전달을 안 해준 건가? 뭐 하자는 거지 대체? 나는 화가 났지만 네 생각을 하면서 참았어. 그리고 아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사망위험' 생각에 결국 이미 처치실에 들어간 너를 한번 보고 갈 수 있겠냐고 물어봤지. 물론 부종이 생기더라도 지금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냥 막연하게 두려웠어.


"몽냥아, 엄마 갔다 올게. 좀 있다가 보자"


또 낯선 곳에 떨어져 어리둥절해진 표정을 짓고 있는 너를 보며, 지금 내가 눈 속에 담는, 넥카라를 낀 채 산소처치를 받고 있는 모습이 네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부정을 탈까 봐 무서웠어. 결국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어 나온 나는, 수납을 하고 회사로 향했지. 회사에선 일부러 바쁘게 일만 하면서 네 소식을 기다렸어. 4시에 CT를 찍고 조직검사를 한댔으니.. 곧 연락이 오겠네, 하면서.


그렇게 5시쯤 나는 B병원의 연락을 받았어.


"보호자님 지금 몽냥이 마취 깨고 있습니다. CT 정밀분석결과는 내일 나오겠지만 우선은 좌측 비강 내 종양 소견입니다. 근데 지금 호흡을 조금 힘들어해서, 오늘 퇴원 가능할지는 상태 좀 더 지켜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결국. 종양이 맞는 거구나. 아닐 거라고 기대 안 하길 잘했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A병원의 선생님이 오진하셨길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기대 안 하길 잘했다. 기대를 안 했으니 충격받지도 않는 거겠지.


6시가 좀 넘은 시각, 네 호흡이 안정적이라며 퇴원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어. 8시까지 오면 된대. 나는 8시 3분 전쯤 병원에 도착했지.


“안녕하세요 몽냥이 데리러 왔어요.”

“네 잠시만요..."

네 이름을 검색해 보는 테크니션.

"오늘 원래 데려가시기로 한 건가요?”

“네. 선생님이 8시까지 오라고 하셔서 온 거예요.”

왜 또… 전혀 전달받지 못한 듯한 눈빛과 표정을 하고 계시는 거죠? 느낌이 싸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또. 기다리래. 진짜 기다리는 말에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잠시만 기다리래 놓고 또 안 올 거잖아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어. 퇴원하는 거니까 그래도 금방 나오겠지, 싶어서.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또 30분을 넘게 기다렸어. 그동안 화가 얼마나 났는 줄 알아? 낮에 수납한 금액 보니, 똑같은 처치더라도 A병원보다 두 배를 받던데. 게다가 아까 나랑 고작 5분 동안 기초적인 질의 응답한 걸 진료랍시고 진료비까지 다 받아놓고서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해? A병원에서 CT랑 조직검사 '의뢰'받은 거잖아. 그럼 그냥 의뢰받은 것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지들 시간만 귀해? 병원이 크고 진료비가 비싸면 시스템이라도 제대로 구축해놔야 할 거 아니야!


결국 폭발한 나는 데스크의 직원 호출 벨을 눌렀지.


“몽냥이 언제 나와요? 저 30분 넘게 기다렸는데요?”

짜증 가득한 말투와 표정으로 묻자 테크니션은 당황한 표정으로 지금 선생님이 수혈 중이시라며 이상한 소리를 했어. 아니, 8시에 퇴원을 시키기로 약속을 잡고 왔는데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테크니션은 선생님께 물어보겠다며 다시 사라졌다가 금세 나타났어.


“지금 바로 3층 입원실 올라가셔서 데리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저 간단한 말을 들으려고 내가 또 기다렸다니… 진짜 이 병원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여기다 너를 계속 맡기기 싫은데. 아휴. 그래 저 사람이 무슨 죄야. 병원 시스템이 개떡 같은걸. 같은 생각을 하며 3층에 올라간 나는 입원실 호출 벨을 눌렀어.


“안녕하세요. 몽냥이 데리러 왔어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 대화, 묘한 기시감이 드는데... 입원실 문을 닫고 사라지는 테크니션의 뒷모습을 보는데 직감적으로 느꼈지. 지금 내가 재촉 안 하면, 또 30분을 넘게 기다릴 게 분명하다!


그래서 10분 정도 후에 입원실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을 붙잡고 얘기했어.


“저, 몽냥이 언제쯤 나올까요? 저 밑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올라온 거거든요.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했고, 그분이 전달하겠다며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널 만날 수 있었어.


“몽냥이 나왔습니다. 지혈 테이프는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떼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네 케이지를 소중히 받아 든 나는 케이지 안으로 네 상태를 조심스레 살폈어. 으아 진짜 코피 나네?

…근데 식도관은? 네 목에 붙어있는 게 뭐 없는데? 어휴. 내 이럴 줄 알았다! 결국 빼먹었구먼.

강제급여 확정이네. 해야 될 건 안 하고, 안 해도 되는 건 하려고 하고. 뭐 하자는 거지? 하긴, 내부직원들끼리 소통도 안되는데 외부 소통은 오죽하겠어.


진짜 다신 오기 싫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99%지만..)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네가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화장실이었어.

쏴아-하는 오줌소리가 얼마나 귀엽던지. 화장실 계속 참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맛동산까지! 역시 유산균만 한 게 없구나.


급한 일을 끝낸 너는 바로 서랍장 쪽으로 토다다 달려가더니 쏙 숨어들었어. 역시 집 밖은 위험하지?


“몽냥아… 그 쪼끄만 몸으로 어떻게 다 견뎠어? 너무 고생 많았어 몽냥아.. 장하다 내 새끼.”


나는 서랍 속에 산소호스를 연결해 두고 손만 넣어 너를 쓰다듬었어. 앞으로 더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보자. 조직검사가 나오기까진 10일 정도가 걸린댔으니…


근데, 강제 급여를 어떻게 해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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