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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구 Mar 09. 2022

아시럽에서 쓰는 명상록 101

내 안에 어머니가 키우던 표범이 산다.

          (내 안에 어머니가 키우던 표범이 산다.)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키웠다.

 양쪽 끝을 단단히 묶어

 웬만하면 풀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여울물은 흐르는데

 슬픔 일어나는 대지를 쿡쿡 밟아 누르며

 가시덤불 밟으며 희망의 언덕을 박차고 달린다.

 진저리쳐지는 절정의 속도로 치달릴 때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너풀대며 걸리적거리고 나를 주저앉힌다.

 구름 한 점 없는데 먼지구름이 속절없이 덮쳐온다.     

 바닥은 햇살 받아 달구어져도 늘 음습하고 천한 공간

 넘어지지 않아도 뒤처진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손길이

 애절한 기도가 된다.     

 내 허벅지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거친 바위산을 뛰어넘는 표범이 산다.

 자유를 그리는 성난 표범이 산다.

 끝없이 갈망하는 짐승이다.  

   

 오늘은 본인의 졸시로 시작한다. 중국은 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당(唐)시는 중국 정신문화의 정수라고 할 정도로 문화적 가치가 높고, 이 황금시대를 이끈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한유 등 기라성 같은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질 만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그중에서도 이태백, 태백의 시와 술 사랑은 분명 그 누구라도 추종을 불허하였나 보다. 그러기에 이 씨 성마저 酒(주)씨로 바꾸어 주태백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고주망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름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살고 싶다는 발악이었으리라! 살되 부정부패가 없고 누구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를 노래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속에서 살고 싶어 피를 토하며 발광하며 울부짖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최고의 낭만주의 시인이게 하였다. 그의 달 사랑 또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어느 날 채석강에서 술을 마시던 그가 물속에 비친 달을 보고는 달을 잡으러 강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렇게 술과 달을 벗 삼아 평생을 방랑시인으로 살다 간 위대한 시인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산중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으며 새들과 교감을 하며 지내다 돌연 검 한 자루 들고 유랑을 떠난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을 품고 세상을 바꿀 꿈을 꾸지만 이루지 못한다. 이후 詩聖(시성)으로 불리는 11살 어린 杜甫(두보)와 만나 중국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두 시인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다시 길을 떠난 그는 양쯔강을 따라 유랑하며 자신만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찾아 외롭고 고독한 방랑 생활을 하다 생을 마친다.    

 

月下獨酌 (월하독작)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 사이 놓인 한 동이 술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혼자 마시네.

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월기불해음) 달은 전부터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부질없이 흉내만 내는구나.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한동안 달과 그림자 벗해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행락은 모름지기 봄에 맞추었다.

我歌月排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我舞影凌亂(아무영능란)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 어지러워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깨어서는 모두 같이 즐기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影結無情遊(영결무정유) 길이 무정한 놀음 저들과 맺어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아시럽을 달리면서 나는 가끔 내가 과연 무슨 힘으로 이렇게 끈질기게 달리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언제나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난 늘 어머니가 가슴에 표범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키우던 그 표범을 내가 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표범은 그리움을 아는 표범이다. 먹이를 쫓아 달리지 않고 그리움을 찾아 달린다. 내 마음에 그리움이 생기고부터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끝장을 보기 위해 편도 항공권을 끊어서 지구의 서쪽 끝으로 가 그곳의 지는 노을에 큰 호흡을 한번 하고는 해가 뜨는 동쪽 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구의 끝을 행해 달리며 피 터지고 대가리 깨지는 전쟁의 끝, 온갖 비열함과 조급함이 묻어있는 분쟁과 대립의 끝을 향해 끝없이 달렸다. 그렇게 달려 압록강을 건너고 대동강을 건너면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세상을 만나리란 믿음으로 모험에 나섰다.

 내 마라톤은 그리움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내 달리기는 아시럽을 서에서 동으로 달리는 공간의 이동이지만 그리움을 따라가는 감정의 이동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평화가 온다면 끝없이 달려도 지치지 않으리! 오랜 고통과 외로움 끝에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부둥켜안는 순간 온전한 두 날개를 갖춘 봉황이 된 줄 안다면! 

    

 몇 날 며칠을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지났고 또 몇 날 며칠을 풀 한 포기만 보이는 사막을 지났다. 사막을 지날 때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아도 좋으니 온전히 내 그리움에 나를 묻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또 몇 날 며칠을 더 달리니 ‘위먼’이라는 오아시스 도시가 나타났다. 이제 오른쪽 시야에는 간쑤성과 칭하이성을 가르는 치롄산맥이 파란 하늘아래 하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길게 뻗어있다. 그 만년설 위에 또 하얀 구름이 머물며 구름과 눈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다.

 여기부터 하서회랑의 시작이다. 아니 끝이다. 시작은 언제나 끝과 맞닿아 있으니까. 하서회랑은 남동쪽의 오초령에서 북서쪽의 옥문관에 이르는 천km에 이르는 황하 서쪽의 복도와 같이 좁은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동쪽의 낮은 산 너머에는 고비 사막이 펼쳐진다. 남서쪽의 치롄산맥은 해발 4천~5천m가 넘는 고봉을 거느린 산맥으로 하서회랑의 오아시스 마을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하서회랑은 월지족이 살던 곳인데 흉노의 침입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일대에 해당하는 일리가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카족의 이동을 촉발시켜 이들의 북인도의 인도, 스키타이 왕국의 건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백일홍 밭이 인상적이다.


 해바라기는 기름을 짜기 위해 심었을 터이지만 백일홍 밭은 의문이었다. 이 꽃들이 치롄산맥이 제공하는 물을 머금고 사막의 풍부한 햇살로 곱게 피어났다. 위먼 시는 이 만년설이 제공해주는 물로 농업이 발달했다. 이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사막의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면서 부지런히 돌고 있다.     

 시장에는 예외 없이 사람들이 북적인다. 중국 사람은 남녀노소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피해 바삐 오가고, 다양한 인종들이 내뱉은 가래침과 고함과 여인들의 악다구니가 뒤범벅이 되어 더 덥고 갈증이 느껴진다. 하미과 하나를 사서 칼로 조각을 내어 입에 문다.


 중국의 시장에서는 모든 것을 팔고 살 수 있다. 이익을 남기려는 공간이기보다는 내게 남는 것을, 혹은 아껴 쓴 것을 팔아 꼭 필요한 것을 사서 돌아가는 곳이다. 조금 전에 염소 몇 마리 끌고 와서 판 사람은 송아지 목을 끌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다. 무엇이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남쪽의 과일과 북쪽의 과일 건조 기후에서 나오는 과일이 다 있다. 사막의 뱀과 전갈 개구리 말린 것이 있고 자라와 잉어와 메기 새우와 가재가 있고 심지어 용봉탕을 파는 식당이 있는 걸 보니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도 있나 보다. 정육점 앞에는 그 자리에서 잡은 양과 소와 나란히 매달려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까치는 전깃줄에 앉아서 고깃덩이를 탐하고 개와 고양이는 길거리에 쪼그리고 침을 삼킨다.

 개고기를 파는 음식점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중국 남부의 광시성에 있는 옥림시에는 매년 하지에 축제가 열리는데 바로 ‘여지구육제’(荔枝狗肉際)이다. 여지는 중국 발음으로 ‘리즈’라는 과일인데 더운 계절에 먹기 좋은 과일이며 여기에 개고기까지 더해 축제가 열린다. 여지구육제는 수백 년 내려오는 옥림시의 전통 풍습이다. 중국인들은 찜으로 먹는 칭탕거우러우를 좋아한다. 둘 다 열을 돋우는 식품인데 더운 한여름에 화기를 먹으면 양기가 서로 호응하여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무더위 속에 황량한 사막을 달릴 때 최고의 행복감이 밀려온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볼 때처럼 기쁨이 몰려온다. 빛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는 더없이 맑고 찬란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달리면서 내 안에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바람개비가 바람과 마주 서서 덧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듯 고통과 마주 서서 그 고통을 삶의 에너지로 바꾼다. 고통이 오히려 영혼을 상쾌하게 하고 맑아지게 하고 냉철해지게 했다.     


 내 안에 사는 표범은 오늘도 질주한다. 그리움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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