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주~1월 2주 2020년을 쿠바에서 맞이하며
주간삶무보고라기엔 너무 오래 건너뛰게 되서 신년 보고...ㅠ
연말 크리스마스가 있던 주, 새해가 있던 주 2주간 쿠바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 나이로 앞자리가 바뀌는 해를 맞이하는데다, 나름 지난했던 2010년대를 보내는 순간이기 때문에, 되도록 해가 ‘늦게’ 뜨는 나라로 가고 싶었다. 몇시간이라도 늦추고 싶은 마음이랄까. 쿠바는 한국과 14시간 차이가 나는 곳이다. (보니까 LA는 17시간 차이... 쿠바가 더 먼데?!) 여튼 그렇게 발광을 했음에도 2020년은 제 시간에 왔다.
쿠바가 처음은 아니다. 8년전 2011년에 장기 여행 때 여행했던 곳이다. 당시 여행때 가장 인상 깊었던 중남미 나라에 다시 간다는 것이 꽤 설렜다. 그 장기여행은 30대를 열었던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40대를 맞이하는 장소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8년만에 다시 간 쿠바는 그 사이 미국과의 관계 호전과 꾸준한 개방 정책으로 무척 많이 변해있었다. 올드 아바나의 50년대에서 멈춘 듯 허름했던 건물들은 재정비되어 깨끗하게 바뀌어 있었고, 그 사이 사이로 화려한 호텔, 힙한 레스토랑이나 가게들이 들어섰다. 올드카와 무려 티코가 대세였던 거리는 노란 택시와 새 차들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쿠바는 다르구만!”를 입에 달고 다녔다. ‘옛날 순수했던 쿠바는 어디에?!’와 같은 무책임한 비아냥은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도 어떤 부분은 적절히 바꿔나가고 있는 인상이었다. 론리플래닛에서 읽었는데, 에우세비오 레알 스팽글레르라는 도시 사학자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도 뚝심있게 아바나를 복원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올드 아바나를 역사적 테마파크처럼 바꿀수도 있었지만 관광 시설과 함께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등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덕분에 국가의 관광수익이 현지 주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고 한다. 급격한 변화가 분명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겠지만-도시 복원의 관점은 훌륭하다고 할만 했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 쿠바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했어서 걱정을 했는데 이런 변화 덕분에 레스토랑도 많고 음식이 무척 맛있었다!
어쨌거나, 쿠바라는 독특한 공간과 그 변화상 덕분에,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할수 밖에 없는 여행이었다. 옛날 그대로일줄 알았던 쿠바가 바뀐만큼 2010년대를 지나오면서 나 역시 많이 바뀌어있었다. 여행을 하면 내가 멋있어질줄 알았던 가난한 30대 배낭여행객은, 좀더 여유는 얻은 대신 현실적이고 시니컬해진 40대 관광객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이제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떠날 용기는 없지만 1,2주 휴가를 다녀오거나 일상에서 덕질을 하면서 내 행복을 찾는 데 골몰할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나이가 드는모양 그대로 나도 나이가 들어 있다.
여행중에 친구들과 각자 ‘위시리스트’ 100개를 써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써보는 건데 의외로 100개 채우기가 어려워 나중엔 쥐어 짜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웃긴 건 자꾸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양제 제때 먹기, 운동하기 등 ‘해야하는 것’들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30대 초의 내가 100개를 채웠다면 뭘 썼을까? 지금보다는 좀더 거창했을까?
2020년 1월 1일 00시를 아바나의 말레꼰에서 맞이했다. 카운트다운 후 자본주의적 불꽃놀이가 아니라 건너편 모로요새에서 터뜨리는 대포(?)로 이곳이 쿠바임을 실감케 했다. 같이 있는 동갑 친구는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나는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해 여행까지 가서 설레발을 친게 무색했다. 생각한 건 한국가서 일하고 돈벌어서 여행가고 덕질해야겠다, 정도. 아 그리고 건강챙기자는 다짐 하나.
이게 바로 나이가 든 증거인가?
그렇게 내 30대와 2010년대를 조용히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