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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씨에 에어컨?!

도망가는 토끼가 되고 싶었다.

by 묘운

요 며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반어법이다.) 그와 이마트를 다녀오고 택시를 타지 않아서 (짐이 무려 3개였다.) 추운 날에 역까지 걸어야 했고 너무 짐이 무거웠다. 나중에 그가 다 들어주긴 했지만. 그래서 택시를 왜 타지 않는 거냐고 불평해 보았는데 묵살당했다. 자기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면서. 거의 포기상태로 돌아와 그에게 요리를 해줬다. 불고기, 다른 날은 떡볶이를 해 먹었다. 어제는 갈매기살이 먹고 싶었지만 솥밥을 먹고.


우리는 그의 포켓 와이파이 같은 걸 얘기하며 어떻게 미국에서 한국까지 카카오톡이 전송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맥도날드 더블 쿼터 파운드가 뜨리 쿼터 파운드보다 큰 거라고 숫자 단위에 대해 시답지 않게 얘기를 했다.


그와 많은 대화를 한 느낌은 아니었다. 예전에 비하면 기억에 남는 게 이 정도이고 내 회사 생활에 대해 조금 얘기를 했다. 뒷담 하는 대리님에 대해 얘기하니 얘기할 거리가 없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 남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고 외로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 친구가 많이 없니? 한국인들은 외로워해. 남자친구도 없어?" 라며 말하길래 "나도 친구 별로 없어."라고 하니 넌 내가 있잖아.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문제는 밥을 먹고 나서였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내가 먹는 약 때문이지 몸이 점차 노쇄하는 느낌였고 기본적으로 단명하는 집안의 내력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핸드폰을 쪼그려 앉아서 하니 마이클이 "너는 핸드폰 중독이야. 빨리 이리 와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새벽 2시가 되어 그가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깨어있었고 바닥에 쪼그려 앉으니 너무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 형국이었다. "나 추워 에어컨 꼭 켜야 해? 넌 너무 이기적이야."라고 말하니 "22도를 맞춰놓는 건 문제가 되지 않고 난 이기적이지도 않아." 라며 뻔뻔스럽고 배려도 없는 태도로 나오는 것이다. 무려 오늘만 국한된 것이 아닌 그가 레지던스에 온 날부터 시작된 싸움이었다. 베개를 던지기도 했고 서로. 그래서 확 김에 "나 갈래."라고 하고 택시를 타고 그이의 공간에서 나왔다.


택시를 타고 오는 중에 이별 택시처럼 아저씨 어디로 가야 하죠가 아닌 남자친구가 이러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하니 결혼을 하신 아저씨였는데 그분은 아닌 거 같다며 잘은 모르지만 아빠의 헤어지라는 말처럼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25도인 집안 온도를 찍어 보내니 [집에 잘 도착해서 다행이다. 근데 25도는 너무 높지 않아? 너랑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내가 미팅을 해야 했어서...]라며 여러 개의 카톡을 보내왔다. 연락과는 별개로 그에게 잡히지 않고 싶고 도망가는 토끼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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