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퇴근할 시간이 되면 머리가 띵해진다.
하루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온몸의 기운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생기 없는 몸으로 남은 일들을 부여잡고 건물을 나선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걸으면서도 생각한다.
집에 가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오늘 회의 내용을 정리할까. 씻고 밥 먹고 수정할까. 수정하고 완료한 후 밥 먹을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밥맛이 싹 증발해 버렸다.
내 에너지처럼.
같은 안건으로 5회 차인가 6회 차 수정이다. 끝없는 수정 요구에 치여간다. 그냥 지겨워진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나는 지금 소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