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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Aug 14. 2019

다시 젊어지시는 아버지께...

“호야! 내다. 아부지다. 우체국 직원이 복숭아 택배 포장한 거 가져갔데이. 받는 사람에게 내일 도착한다고 말씀드리고. 우리집 복숭아 사줘서 고맙다고 전해드리고”


아버지! 아버지는 오늘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5번째 전화로 하십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또 하시고 또 하시는 것을 알고 계시죠? 그래서 어머니한테 구박도 가끔씩 받고 그러시잖아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깜빡깜빡하시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계속해서 전화하시고 했던 말씀 또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생각을 하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이 좋대요.


몇 달 전에 읍내 치매안심센터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치매 초기라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약을 드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 몰래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상담사랑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시는 능력이 다소 떨어지시는 것 이외에 특별한 문제점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이가 드시면 자연적으로 기억력은 떨어지니까 그것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녁에 약 드시는 것은 꼬박꼬박 챙겨 드셔야 합니다. 지난달에는 약을 챙겨 드시지 않은 날이 많았잖아요.


“너거 아부지는 유나, 유주 아니면 웃을 일 없다. 유나, 유주 다녀간 날은 수면제도 안 먹고 저절로 잠드는 날도 있다 아이가?”


어머니는 아버지가 손주들과 함께 보낸 날에는 정말 즐거워하신다고 말씀하세요. 아마도 아버지가 수면제를 드신 것이 큰삼촌이 돌아가신 무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삼촌 두 명이 형인 아버지보다 일찍 저세상으로 떠나고 난 뒤 참 슬퍼하시고 우울해하셨던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특히 큰삼촌이 목재공장에서 일하시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눈물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멍하니 밤새 삼촌 영정을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조금 더 일찍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버지 연세 일흔 넘어 본 손주에 저렇게 좋아하시고 웃으시는데 제가 10년만 더 일찍 결혼했더라면 장가 못 간 아들 걱정도 안 하셨고, 손주들 재롱도 더 많이 보셨을 테지요. 지난주에는 유나, 유주와 마당에서 물장난하시는 모습에 저 모습이 아버지 맞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누나들과 저랑 놀아주셨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요즘 아버지 모습을 보면 가끔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유나, 유주와 함께 웃으시면서 놀아주시는 모습, 배가 아프면 어머니에게 짜증 내고 약을 안 먹겠다고 하는 모습, 안 드시던 빵이나 피자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 그래도 얼마나 좋아요? 안 드시던 간식을 드시니까 체중이 이제 60kg을 넘었잖아요. 아 참, 그리고 그저께는 어머니 시장 갔다가 비 오니까 우산 들고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 나가 계셨다면서요? 진작에 좀 더 잘해 주시지…


얼마 전 제가 사는 대구에 있는 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하는 특강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교수님 말씀이라면 전폭적인 신뢰를 하시잖아요. 강의를 하셨던 분은 고려대 박건우 교수님인데 치매는 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노인이 되면 지혜와 민첩성이 조금 감소되는 것이지 절대 병이 아니래요. 그리고 제가 봐도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아직까지 저한테 전화하실 때 단축번호 안 누르시고 직접 제 번호 누르시잖아요. 저는 단축번호 아니면 아버지께 전화 못 해요.


했던 말 또 하시고 또 하시면 어때요. 했던 말씀하실 때마다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근데 10번 이상 하시면 피곤하니까 9번까지는 제가 봐 드릴게요. 복숭아 따실 때 따야 할 나무 고민하시는 것은 어머니나 제가 항상 ‘이 나무 따세요, 저 나무 따세요’라고 말씀드릴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아버지!


요즘 복숭아 값이 형편없어서 걱정이 많으시죠? 지난번에 청도 공판장에 18박스 가져갔는데 판매대금 합계가 45,000원이 나와서 20번 넘게 저에게 ‘복숭아 값이 똥값이다. 밭에 그냥 버리는 게 낫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이후로 제가 아는 인맥 다 동원해서 택배로 팔아드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도 새벽에 갈 테니까 먼저 밭에 가지 마시고 저랑 함께 가요.


아버지!

쑥스럽지만 이제부터 자주 할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9년 8월 14일


                                                     아들 명호 올림.

아버지가 젊었을 때 엄마랑 같이 돌과 흙으로 직접 만든 헛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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