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통달 Aug 20. 2019

냉장고와 소금창고, 그리고 어머니...

아직도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소금기가 남아있다

“어! 너 입에 뭘 물고 있노?”

“이거? 얼음이다. 냉동실에서 얼라놓은 거다. 니도 한 개 주까?”

“응. 한 개만 주면 안되겠나?”

“그라마 큰절 한 번 해봐라!”


집에 냉장고가 있던 영식이는 여름에 얼음을 물고 마을 공터에 자주 출몰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얼음을 담아 동네 아이들에게 큰 절을 받고 얼음 한 덩이를 나눠주었다. 나도 영식이에게 자주 큰절을 했다. 



시골에 살았던 어린 시절, 대부분의 집은 냉장고가 없었다.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이라고 해봐야 보온도 안 되는 ‘선학표’ 밥솥과 ‘럭키금성’ 흑백텔레비전, ‘대한전선’ 선풍기 1대뿐이었다. 겨울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함께 흑백텔레비전을 보면서 잠들었다. 문제는 여름이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은 음식 상할 걱정이 없었지만 여름은 하루하루가 음식과의 전쟁이었다. 



어머니의 땀과 소금이 더해진 부엌은 소금창고였다


쌀과 섞은 보리밥은 부엌 안 시렁에 무명천으로 덮인 채 매달려 있었다. 찬장 안에 있는 반찬은 소금기 가득한 된장찌개와 빨간색 고추장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끼 식사 때마다 가지무침이며 박나물, 상추 겉절이, 오이무침 등 밭에서 나오는 채소들로 한 끼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했던 시절 부엌은 엄마의 땀에서 나온 염분과 더운 날씨에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려 소금을 많이 썼던 반찬의 염분이 더해진 소금창고같은 곳이었다. 


여름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반찬은 오이냉국이었다. 지하수 차가운 물에 오이를 쫑쫑 썰어서 넣고 고춧가루와 소금, 지렁장(간장의 경상도 방언), 참기름을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였다. 일단 한 그릇을 원샷하고 난 뒤 어머니에게 한 그릇을 추가 주문하고 두 번째는 오이냉국에 보리밥을 말아먹었다.


여름이라고 항상 채소만 먹을 수 없는 법! 어머니는 4일, 9일에 열리는 읍내 5일장에서 고기를 한 덩이 사 오시면 그걸 된장찌개에 넣어 주셨다. 모처럼의 단백질 공급 덩어리를 찾아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열심히 휘젓고 하다 아버지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고, 고깃덩어리인 줄 알고 식구들에게 빼앗길까 봐 급하게 떠서 입으로 넣었는데 된장 덩어리가 씹혀서 허탈함에 웃음 짓기도 했다.



냉장고가 우리집에 들어오던 날


국민학교 4학년 때 드디어 우리집에도 냉장고가 들어왔다. 읍내 전파상에서 거금 5만 원을 주고 사온 별이 3개가 붙은 ‘삼성전자’ 중고 냉장고였다. 마루에 냉장고가 들어오고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닦으셨다. 냉장고 손잡이에는 연두색 털실로 짠 커버도 씌우셨다. 오이냉국에는 얼음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상하지 않게 매 끼니때마다 끓였던 된장찌개는 냄비 채로 냉장고 안에서 불의 공격을 받을 준비를 하며 싸늘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놓았던 가지무침은 가끔씩 상해서 버려지기도 하는 예전에 있을 수도 없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냉장고는 이렇게 어머니의 삶과 가족의 삶을 바꿔놓았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어머니는 깻잎무침, 젓갈, 미역 튀김 등 냉장고가 없던 시절 주로 먹었던 소금이 많이 들어간 반찬을 주로 만드신다. 국도 하루 이상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한 메뉴 위주로 끓여 내신다. 물론 국도 짜다. 


가끔씩 어머니께 묻는다

“엄니! 음식이 너무 짜요. 좀 싱겁게 해 먹어야 건강에 좋아요.”


그러면 어머니는 대답하신다

“야야! 소금이 좀 과하다 싶게 들어가야 맛이 있능기라. 그라고 오래 묵을 수 있꼬…”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13g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매일 5g 이하의 소금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과도한 소금 섭취는 고혈압과 뇌졸중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50년 넘게 이어온 어머니의 요리 습관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다. 젊은 날 그 더운 여름날 소금창고 같은 부엌에서 흘린 땀의 염분이 아직까지 손가락 마디마디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2018년 8월 26일 고향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신 점심 밥상의 모습


작가의 이전글 사쿠라 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