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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Nov 15. 2019

어쩌다 어른, 선택한 행복

<어쩌다 어른>을 읽고...


지하철역에 있는 중고서점에서 이 책 제목을 보고 내용도 보지 않고 가방에 넣고 나왔다(계산은 하고 나왔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서른 즈음에’라는 김광석의 노래 가사가 켜켜이 내 시린 영혼에 쌓이던 때가 있었다. 특히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부분은 힘들었던 시절 소주 2병 정도를 더 마시게 했던 목소리였다. 참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서른이 지나자 마흔이라는 나이는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시골 간이역처럼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의 감수성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마흔이라는 숫자의 거리보다 쉰이라는 왠지 냄새가 날것 같은 나이가 더 가까이에 있다.



어쩌다 어른이 되니 겁이 많아졌다. 나의 몸짓과 혀와 손가락에 의해 전해지는 나의 말들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을까 고민하는 습관이 많아졌다. 그저께 아내가 내가 그동안 무심코 던져왔던 농담이 쌓이고 쌓여 상처가 되었다며 밤에 폭풍처럼 나를 몰아쳤다. 나는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아내가 답답했지만 말이란 것이 내 입에서 나왔지만 상대방 귀에 들어가는 순간 그 말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미안하다고 싹싹 빌었다. 다시는 그런 농담은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그 농담은 바로 ‘혼자 있고 싶다’였다.



최근에 출장이 많았다. 일을 하러 가는 길에 시간이 나면 화장실 핑계 삼아 유적지나 관광지 곳곳을 구경했다. 가을가을한 단풍이 절정인 주왕산의 용추폭포 가는 산길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으며, 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백의 고장 상주 들판은 꽉 막힌 내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직지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산채정식과 군위군 화본역 앞에서 먹었던 국수는 내 입을 웃게 했다. 모두 혼자여서 편하게 보고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행복함이라는 감정과는 별개로 혼자라는 것은 분명 편했다.

김천 직지사에서 혼자 먹고 단풍놀이를 하는 중...

                                    

이 책을 쓴 이영희 작가는 혼자다. 혼자라는 말은 좀 멋이 없으니 솔로나 싱글이 낫겠다. 혼자 드라마나 만화를 보고 집에 혼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좋아하며 밥하기가 싫으면 김밥천국의 성령이 아닌 식령을 받는 사람이다. 나도 예전에 그랬었다. 퇴근하고 대충 저녁을 먹고 20년이 넘은 가죽소파에 팬티만 입고 누워 프로야구 TV 화면을 음소거 해놓고 나 혼자 캐스터와 해설자 역할을 번갈아 중계하며 히히덕거리던 때가 있었다. 누가 봐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때는 혼자라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흔이라는 고개를 넘기 전에 결혼을 했다. 나 혼자에 아내가 더해지더니 곧이어 딸내미 두 놈이 생겨 가족사진에는 4명이 빙그레 웃고 있다. 얼마 전 아내에게 야단맞는 시간에 아내는 ‘혼자 있고 싶다’라는 농담과 함께 ‘나는 딸을 3명 키우고 있다’라는 농담도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이라며 나에게 폭풍을 몰아쳤다. 그렇게 혼자가 좋으면 나가서 혼자 살라는 최후통첩과 함께…



혼자가 물론 편하고 좋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하기엔 뭔가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고 딸내미들을 키우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물론 그 행복이라는 단어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섞여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 술을 좋아하는 알코올 의존성 쾌락의 일정 부분의 포기, 편안함과 안락함의 포기 등등…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부정적 의미보다 수 백배 많은 즐거움과 긍정적 에너지가 있기에 기꺼이 책임감을 안고 편안함과 쾌락을 일정 부분 버리며 살아간다. 이것이 가족을 지키는 家長의 행복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글이 잘 안된다. 이 글은 어쩌다 보니 아내에게 바치는 반성문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 진심이다. 진짜 진짜 진심이다. 물론 내가 진심이라고 우겨봐야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내의 몫이다. 이상 끝!!!

<어쩌다 어른> 이영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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