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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Feb 22. 2021

제발 전화하지 마십시오

명태는 평생 바다에 살아서 비린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판매 현황 모니터에 고객 문의가 접수되었다는 알림 표시가 떴습니다. 클릭해보니 2봉지를 구입하고 한 봉지를 먹는데 비린내가 나서 못 먹겠으니 환불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택배사에 수거 요청을 했습니다. 오늘 그 고객의 반품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2봉지 가운데 한 봉지는 절반 이상을 먹고 나머지 한 봉지도 이미 개봉한 상태였습니다. 갑자기 속에서 불덩이 하나가 이글이글 불타오릅니다.


“시바! 비린내 나는 걸 어떻게 절반 넘게 처먹을 수 있어? 그리고 비린내 나는데 왜 나머지 한 봉은 왜 개봉을 해! 그리고 평생을 바다에서 놀던 명태의 껍질을 벗겨내어 만든 제품인데 비린내가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냐? 시바! 진짜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물론 속으로 한 말입니다. 고객한테 저렇게 말했으면 벌써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난리가 났겠지요. “시발꺼!”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반품된 제품은 그대로 꺼내어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빈 박스는 발로 세게 찼습니다. 박스는 구석에 그대로 처박혀 찌그러집니다. 저의 속상한 마음도 함께 찌끄러집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직종과 회사를 경험했습니다.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벤처기업, 자영업, 그리고 친구 회사까지 여러 규모의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영업, 마케팅, 경영지원, 총무, 기획, 배송일까지 여러 분야의 업무를 섭렵했습니다. 힘든 업무에 도망쳐 나오기도 했고, 회사 사장들과 싸우고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고객들과의 트러블로 9시 뉴스에 나가 인터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사회생활을 했고, 지금도 그 파란만장의 어느 물결에서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들지 않은 곳은 없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업무는 없었습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일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20년 넘게 줄곧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만큼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고객이든 회사 내부의 동료이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지긋지긋했습니다. 요즘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전화를 받는 것입니다. 업무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저는 전화받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오랜만의 친구의 안부전화도 받기 싫어 건성건성 말하다 그냥 짧게 통화를 끝냅니다. 옛날 직장동료의 전화번호는 퇴사와 동시에 대부분 삭제해버립니다. 특히 오후 6시 이후 전화는 웬만하면 받지 않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고객이라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거래처라는 인간들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체득했습니다. 지랄 같은 사람을 대하며 상처받고 스스로 치유하며 박힌 굳은살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지만 아직도 작은 일에 흥분하고 마음을 다치곤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돈 벌기 위한 시간과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철저하게 분리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느 소속의 사람이 아닌 “조명호”라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시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40분 정도의 글 쓰는 시간, 지하철에서 읽는 1시간 정도의 책 읽는 시간, 일을 끝내고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와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팟캐스트를 들으며 히죽거리는 1시간의 걷기 시간은 나에게 너무 소중합니다.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택배 포장을 열심히 해야 하는 날입니다. 이런 지랄 같은 장사꾼이 파는 제품을 사주시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무작정 걸으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돈 버는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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