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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n 07. 2022

딱 나다

분노조절장애와 피해망상

난 시간 약속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한다. 병원이든 식당이든 예약 시간 10분 전에는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 살면서 사람과의 약속시간에도 늦어본 적이 거의 없다. 불가피한 사유로 사전에 약속 자체를 파기한 적은 있어도 약속을 정했으면 시간 약속은 칼처럼 지킨다. 그래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가 어렵다.


아이 등교 준비를 마치고 아침 8시가 되면 나는 매일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히느라 성난 황소처럼 콧숨을 수십 차례 내쉰다. 깨워서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준비물을 챙기고, 물통을 챙기고, 마스크를 쓰게 하고, 머리를 빗기는 것은 분노의 화산이 폭발하기 전의 예열 과정이다. 이미 늦었음에도 현관 신발장에서 이 신발, 저 신발 신고 벗고 하는 모습에 드디어 폭발한다.


“야! 제발 좀 제시간에 나가자고!”



지난 토요일 병원을 갔다.

아버지 약을 타기 한 달 전에 예약한 9시 30분이 되었는데 아버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5분은 참았다. 다시 미친개처럼 씩씩대고 시계를 보면서 간호사에게 무언의 항의를 했다. 10분이 지났다. 예약시간이 지났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나의 예약시간에 앞서 들어간 환자가 상담이 길어진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10시에는 도서관에서 아이들 수학 수업이 있다.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9시 30분에 예약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 수업에 제때 도착할 수가 없다. 분노가 다시 스멀스멀 시동을 걸기 시작했으나 참았다. 9시 50분이 되자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매달 똑같은 약 처방이라 상담 자체가 무의미하다. 오늘은 더더욱 그러하다.


“환자분은 요즘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지난번과 같은 처방 부탁드려요.”


“네~”


5초의 상담 시간이 끝이 났다. 다음 예약시간을 정하고, 수납을 하고, 약을 타고 차에 올라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수업 시작 시간은 이미 글렀다. 그래도 전속력으로 달려서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교실에 넣어야 한다. 아내도 아이들도 이런 나의 분노 지수를 파악하고 조용히 120km로 휙휙 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2차선으로 급하게 달리고 있는데 앞에 화물차가 있어서 1차선으로 차를 옮겼다. 1차선 저 뒤에서 차가 오고 있었지만 내 나름대로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차선 변경을 했고, 화물차를 추월한 뒤 다시 2차선으로 옮겼다. 그 순간 1차선 저 뒤에 있던 차가 2차선에 있던 내 차 앞으로 확 끼어들었다. 자기 주행 차선에 내가 끼어들었던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놀랐다. 나도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마침 교차로에 정지신호가 켜졌고 그 개새끼 차가 멈추었다. 난 안전벨트를 풀고 그 차 옆으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어이, 아저씨! 내가 뭘 잘못했어요? 어디서 급하게 끼어들고 지랄이야!”


평소에 천사(?) 같은 내 얼굴이 헐크로 변했고, 아내는 그러지 말라고 통사정이다.


“아저씨가 먼저 끼어들었잖아요!”


“그렇다고 아이들 탄 차 앞에 그렇게 위험한 운전을 하고 지랄이야, 이 씨….”


그때 신호는 녹색으로 바뀌었고, 그 차는 쏜살같이 달아났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 도서관 수업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타고 있는 차는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기아자동차 2016년식 카렌스였고, 그 개새끼 차는 얍삽하게 잘 빠진 독일에서 건너온 벤츠 스포츠카였다.


분노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속삭인다.


“아빠! 괜찮아?”


괜찮지 않다.


어떤 영화에 나오는 이병헌 배우처럼 그 개새끼를 차로 끌고 나와 두들겨 패고 자동차 키를 뽑아서 강물로 던져버려야 했다. 아! 벤츠는 스마트키라서 자동차 키를 뽑을 수는 없겠지. 하루 종일 그 개새끼 때문에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안정이 안되었다. 확실히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맞는 것 같다. 경증인지 중증인지 모르지만.


분노조절장애의 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라고 한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는 폭력이 동반될 수도 있는 분노의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행동 장애로,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을 특징적으로 한다. 네이버가 말해주는 내용이다.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

 

딱 나다.


치료가 늦어질수록 뇌의 교감신경이 잘 조절되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린 느낌으로 살아간다. 세상 사람 모두 나처럼 살고 있는데 유독 나만 힘들게 살고 있다는 피해망상을 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피해망상은 자신의 결함, 적개심, 불만이 남에게 투사되어서 오히려 남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고 뒤집어 씌워서 만들어지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또한 상상된 학대, 불이익 등을 이유로 신고, 소송 등의 법적인 행동을 취하기 좋아하는 병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서도 흔하게 관찰된다고 한다.


딱 나다.


툭하면 안전신문고 앱을 이용해 불법 주정차나 오물투기를 신고하고 아파트 인터넷 카페에 수시로 민원을 제기한다. 오늘도 포털 뉴스 기사에 전여옥에게 ‘년’이라고 댓글에 적었다가 강제 삭제당하고 주의 조치를 받고 나서 고객센터에 항의까지 하고 그랬었더랬다.


한마디로 미친 거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와 피해망상…

시바…

나에게 분노를 안겨준 그 그 개새끼 차가 벤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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