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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n 29. 2022

오늘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듣는다

대학교 MT에서 처음 들었던 노래를...

가수 정태춘의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 3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한국적 포크의 전설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한 작품으로, 시대별 대표곡과 세대별 팬들의 특별한 사연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정태춘 음악의 현재성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개봉과 함께 독립예술영화 1위에 오르며, 개봉 4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한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개봉 10일 만에 2만 관객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의 공세 속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이어 꾸준한 단체관람 릴레이 등에 힘입어 3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독립영화로는 올해 '그대가 조국' '나의 촛불'에 이어 세 번째 3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시인의 마을, 촛불, 장서방네 노을, 사랑하고 싶소, 북한강에서, 사망부가, 탁발승의 새벽노래, 아,대한민국..., 애기, 떠나가는 배, 저 들에 불을 놓아,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저녁 숲 고래여, 서울역 이씨…


정태춘은 가수지만 운동가입니다. 팬들과 무대에서 만나는 것과 함께 시장과 현장, 그리고 거리에서 대중들을 만났습니다. 그를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음악 활동에 그치지 않고 각종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에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운동가이기도 한 정태춘의 활동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1990년대 초에 사전심의 폐지 운동을 전개하여 19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일입니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이 노래를 1993년 대학교 신입생 MT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밀양 표충사가 있는 천황산 고사리분교 언덕. 밤새 텐트 안에서 선배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안주도 없이 종이컵에 소주 대병을 부어 마시며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헤롱헤롱하던 그때 형구 선배가 외쳤습니다.

 

“야들아! 우리 밖으로 나가서 노래 한 번 부르자!”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사자평 억새풀 언덕(밀양시청 사진 제공)


형구 선배가 선창을 하자 호선이 형, 한준이 형, 상영이 형, 병룡이 형, 성욱이 형 등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물론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어서 따라 부를 수 없었고 그냥 고함만 질렀습니다. 푸른 억새풀이 비바람에 스치며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던 천황산 사자평은 술에 취한 남자들의 <떠나가는 배>의 노랫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 <떠나가는 배>와 <시인의 마을>, <촛불> 등 정태춘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50이라는 숫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이에 이 노래를 들으니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술에 취하면 <떠나가는 배>를 목청껏 부르던 그 형구 선배는 몇 년 전 먼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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