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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Nov 28. 2022

고맙다는 말, 그게 뭐라고...

천운을 얻은 아버지와 똥 밟은 엄마

“가위 바위 보!”

 

손녀와 가위바위보를 하던 아버지가 내민 손은 2년 동안 매번 똑같은 ‘보’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당연히 ‘보’를 낼 줄 알고 ‘가위’를 냈던 손녀 1호는 ‘바위’로 공격한 할아버지에게 2년 만에 패배를 기록했다. 

 

“아빠! 할아버지한테 졌어. 할아버지가 주먹을 냈어!”

 

얼마 전 아버지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직원들에게 화를 내셨다고... 아마 직원들이 아버지를 일반적인 치매 환자 취급을 하니 당신이 화가 나서 욱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식사 시간이면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모범 할아버지 딱지를 받았을 아버지가 화를 내자 직원들은 놀랐겠지. 

 


아버지의 치매


한동안 나빠지기만 하던 아버지의 치매 생활은 그렇게 더디게 하루하루가 갔다. 

하지만 가끔은 손녀에게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2년 만에 승리를 거두기도 하고, 주간보호센터 직원들에게 큰소리도 지르며 예전의 ‘한성질’을 다시 보여주기도 하는 등의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혼자 구구단을 외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혹시 아버지가 치매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나 혼자 해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해방이 되던 해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3살 위 고모도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고모보다 먼저 태어난 할머니의 자식들은 자꾸 죽었다. 할머니는 동네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한국을 떠나라고 조언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죽게 된다는 무당의 말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살림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고모와 아버지를 낳았다.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세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내가 보지도 못한 고모는 아주 어릴 적 8살도 안되어서 죽었다. 삼촌 둘은 그래도 오래 살았다. 막내 삼촌은 40이 되기 전에 암으로 죽었고, 그 위 삼촌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60이 되기 전에 죽었다. 공교롭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산한 자식 가운데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 죽었고, 일본에서 태어난 고모와 아버지만이 아직 살아있다. 무당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아버지는 태어나 보니 가난했다. 

건강한 자식 생산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 온 탓에 할아버지가 상속받았던 논 3마지기는 현해탄에 녹아 사라졌다. 재산이 없으면 부지런이라도 해야 먹고살거나 농사지을 땅이라도 마련할 수 있었으나 불행히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천성이 게을렀다. 아니, 게을렀다고 한다. 더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두 사람 모두 술을 좋아했다. 부부가 술을 좋아했으니 농사 일이라고 잘 했을 리가 없었겠지. 가난은 고스란히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대물림되었다. 

 


천운을 얻은 아버지, 똥을 밟은 엄마


그래도 아버지는 천운을 얻었다. 

엄마를 만난 것이다. 

반대로 엄마는 천운 대신에 똥을 밟았다.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우리 엄마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이다. 

집에서 일이나 하라는 외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다니던 국민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골 깡촌에서 10대 시절을 집안 일과 농사일을 하며 보내다 중매쟁이의 거짓 정보에 속아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중매쟁이가 제공한 아버지의 결혼정보 10마지기의 논은 온데간데없고 봄이 되면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중매쟁이가 말한 번듯한 집은 시부모님과 시동생들, 신혼부부였던 아버지, 엄마가 겨우 테트리스 퍼즐 맞추듯 잠을 청해야 하는 방 2개가 있는 초가집이었다.

 

신혼시절 밤이면 막막함에 소리 없이 숨죽여 아궁이 앞에 쪼그려앉아 울었고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때마침 생긴 큰누나로 인해 탈출은 감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농사일과 집안일은 처녀 시절의 몇 곱절이 더해졌다. 큰누나를 낳고 2년 뒤 또다시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는 성별의 작은누나가 태어났다. 엄마는 죄책감과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산후조리 없이 출산 후 이틀 뒤 모내기를 위해 아버지가 소작하던 논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2년 뒤 드디어 우리 집 대문에는 빨간 고추가 달린 금줄이 걸렸다. 남자인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미역국을 보름 넘게 질리도록 먹었다. 할머니의 산후조리를 받으면서.

 

아버지는 평생 엄마에게 따뜻한 미소와 손길을 준 적이 없다. 

큰누나가 태어나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작은누나를 낳고 산후조리도 못한 채 농사일을 나가는 엄마를 막지도 않았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 원망의 마음을 밀어낼 만큼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 그러니까 치매에 걸린 남편과 한 이불을 쓰고 꼬박꼬박 식사를 챙기고, 약을 먹이고, 머리를 감기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키겠지. 

 


고맙다는 말, 그게 뭐라고...


엄마의 소원은 두 가지다. 


"아버지가 하루빨리 돌아가시는 것과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처음 받았을 무렵이었다. 

멀쩡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치매라고 하니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 충격으로 몇 달간 일상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은 이제 적응이 되어 아버지가 엉뚱한 행동과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손짓 하나, 한 마디 하나가 신경에 거슬렸고, 하루 종일 당신을 따라다니는 아버지에게 엄마는 몸서리를 쳤다. 엄마는 수시로 고함을 질렀고 집 뒤에 혼자 숨었다. 그럼 아버지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물론 지금 아버지는 전화를 걸지 못한다.

 

“호야! 너거 엄마 없다. 어데 가뿐노? 어여 와서 좀 찾아봐라.”

“아부지! 와캅니까? 또 엄마 괴롭힜슴니꺼?”

“내가 머 괴롭히노? 너거 엄마가 지 혼자 저카는거지…”

 

급하게 내려가 엄마가 숨은 곳으로 가보니 엄마가 울고 있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눈두덩이 부어있다. 

엄마를 데리고 나와 아버지와 셋이 방에 앉았다. 엄마는 또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평생을 고생하고 시집살이하고 너거 아부지한테 고맙다는 소리 한 번 못 들어봤다. 늙어서 이제 좀 편히 살라카니 저런 뭉디 같은 병이 들어가꼬 나를 또 개롭힌다. 당신 내한테 고맙다 소리 한 번 해봤능교? 고맙다는 소리 한 번 해보소! 어이!”

 

절규에 가까운 엄마의 울부짖음을 듣고 내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부지! 엄마한테 고맙다고 한 마디만 해 보시소. 엄마 소원이라 카네요.”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눈만 끔뻑이며 아무런 말이 없다.

 

“고맙다카는 소리 한 마디만 해보시소. 예?”

 

그날...

백 번 넘게 고맙다는 소리를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지만 아버지는 절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 그게 뭐라고… 


울부짖는 엄마와 고함지르는 아들을 퀭한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는 아버지. 저녁상을 차려서 방에 넣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 시간 넘게 차에서 울었다.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이상하게 아버지의 치매는 아주 더디게 진행된 느낌이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도 줄어들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직원들에게 고함도 지르고, 손녀와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도 거둘 만큼 안정적이다. TV에 글자가 나오면 계속 따라 읽는다. 가끔은 구구단도 혼자 중얼거린다. 혹시 치매가 아닌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 만큼… 이 모두가 아버지가 일찍 죽기를 바라는 엄마의 지극정성 때문이다.

 

엄마의 소원은 아직 미완성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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