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라는 습관, 스마트폰이라는 중독에 대하여
“대리님! 뭐 쓰레기를 드세요?”
친한 거래처 직원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커피와 담배연기, 그리고 점심때 먹은 된장찌개가 입안에서 뒤섞여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거친 후 내 입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배출되고 있었다. 15년 전 난 하루 3갑의 담배를 피웠다. 자고 일어나면 한 대, 똥 누면서 한 대, 사무실 가서 믹스 커피 마시면서 한 대, 회사 사무실 대빵한테 욕 얻어먹고 한 대, 직원들과 회의하면서 한 대, 밥 먹고 한 대, 또 커피 마시면서 한 대… 피고 피고 또 피는 무궁화가 아니라 피고 피고 또 피는 담배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원들과 모여서 피는 담배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선함이었다. 맛난 밥을 배불리 먹고 난 뒤 식후땡 담배는 소화제 이상의 약효를 주는 듯 느껴졌다. 거래처 사장님이 내어주는 담배를 두 손으로 받아 곱게 빨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연기를 날리는 행위는 영업사원의 매너를 판단하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렇게 담배를 피웠지만 중독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습관성 행동이었다. 중독과 습관의 경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습관과 중독은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습관의 경우 그 행동을 멈추려고 하면 스스로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실제로 난 담배를 피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일주일이나 보름 정도 피우지 않은 적도 있다.
하지만 중독은 다르다. 중독의 경우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뇌의 신경회로에 변화가 생긴 상태이기 때문에 조절 능력이 저하돼 그 반복 행동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멈추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줄이거나 멈추려고 했을 때 심리적 혹은 신체적 금단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흔히 중독이란 알코올, 마약, 니코틴, 카페인 등 물질 중독을 주로 의미한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난 그 습관성 행동인 담배를 10년 전 미련 없이 끊었다. 결혼 후 가끔씩 나무젓가락에 담배를 끼워서 피고 난 뒤 양치질을 하고 섬유탈취제를 내 몸에 살포한 뒤 퇴근하기도 하는 번잡한 절차를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귀찮아서 그 짓거리도 끊었다. 담배를 끊어도 심리적 혹은 신체적 금단증상은 없었다. 난 내가 20년간 피워 온 담배를 중독이 아닌 습관성 행동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큰 금단증상 없이 단박에 끊을 수 있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조마조마하다. 책을 펼쳤지만 제대로 눈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어서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낸다. 침대에 누웠지만 눈만 말똥말똥하다. 다시 불을 켜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이것이 금단증상이다. 평소 습관처럼 하는 행동을 줄이거나 멈추려고 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신체적 현상이다.
예전에는 알코올, 마약, 니코틴, 카페인 등 물질에 의한 반복된 행동을 중독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도박,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특정 행위도 물질 중독에서와 같은 뇌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행위의 반복된 행동도 중독이라고 한다. 나의 행동을 종합해 본 결과 의사의 정확한 진료를 받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나란 인간은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규정지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무심코 스마트폰을 켠다. 운전 중 신호가 바뀌면 SNS에 내 게시물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 잠금을 푼다. 아이들과 놀면서 울리는 카톡 소리에 총알같이 달려가 누가 나를 호출했는지 확인한다. TV를 보면서도 스마트폰, 운동을 하면서도 스마트폰, 술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심지어 독서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한다. 아니 스마트폰을 하면서 TV를 보고, 운전을 하고, 아이들과 놀고, 술을 먹고, 독서를 한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스마트폰이 모든 행동의 중심이었고, 다른 행동이 부수적 행동이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중독’인 것이다.
“이제 세상에 대해 위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실시간성에 집착할 때, 한 박자 늦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는 행위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접속하느라 분주한 것 같지만 실은 게으른 것이요,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 한 발짝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나태다. 바쁨을 위한 바쁨일 뿐이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이다. 행복 천재들의 또 하나의 비밀 병기다.” _최인철<아주 보통의 행복> 中에서
예전 종이로 된 다이어리가 하던 일을 스마트폰이 하고, 컴퓨터가 하던 일을 상당 부분 큰 불편 없이 스마트폰이 한다. 디지털카메라와 MP3가 하던 일을 스마트폰이 훨씬 더 쉽고 편리하게 척척해낸다. 은행에 갈 일도, 우체국에 갈 일도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이 없애 주었다. 이미 그 스마트폰에 나의 일상과 업무와 인간관계를 맡긴 이상 완전히 끊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스마트폰을 줄이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루가 지났다. 초조하고 짜증 나고 불안한 금단증상이 나타났다. 스마트폰은 강력한 자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방에 놓아둔 스마트폰은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거실에 있는 나의 몸과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난 재빨리 그 자기장을 차단하고 현관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물론 스마트폰은 안 방에 그대로 두고…
‘내 SNS에 요즘 왜 게시물을 안 올리나 댓글을 단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 많은 단톡방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당근마켓에 좋은 물건 올라온 것 없을까? 먼저 찜해야 하는데…”
한참을 걷다가 집으로 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내 SNS에는 아무런 댓글도 없이 의례적인 ‘좋아요’ 2개가 있었고, 카톡에는 광고 메시지만 1개, 당근마켓에는 뭐 그저 그런 물건만 타임라인에 펼쳐져 있었다. 내 인간관계의 협소함과 소극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끊임없이 접속하느라 분주한 것 같지만 실은 게으른 것이요,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 한 발짝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나태다. 바쁨을 위한 바쁨일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초조하고 불안한 금단증상이 가끔 나타나지만 의식적으로 차단했다. 그때마다 쉽게 읽히는 책을 옆에 두고 읽었다. 스마트폰을 줄이니 무료할 정도로 시간이 많아졌다.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포털과 SNS에 올라오는 정치뉴스를 보며 화를 내며 댓글을 달고 욕을 하던 내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응대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오늘 아침에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SNS을 클릭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던져버렸다. 십 년 넘게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뇌의 신경회로에 이미 스마트폰은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중독은 질병이다. 고쳐야 한다. 스마트폰 세상에 위대한 저항을 시작하고 실시간에서 벗어나 한 박자 늦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서 나와서 ‘진짜’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아... 내가 올린 이 글에 누가 나쁜 댓글 쓰는 사람은 없겠지? 한 번 확인해 볼까? 아냐... 참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