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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un 07. 2023

뭐라도 해봐야지예...

'대구경북겨레하나 통일쌀 모심기' 행사 취재기

"저 오마이뉴스 조명호 시민기자님 되시죠?"


"네, 누구시죠?"


"아 맞군요. 저 영천에 황병호라는 사람입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근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이번 주말에 저희 지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어서요. 취재 요청 좀 드리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간간이 여러 가지 종류의 기사를 써 왔지만 취재요청을 받아보긴 처음이다. 예전에 한창 뜨겁게 시민운동을 하던 시절 함께 하던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말(3일)에 '통일쌀 모심기' 행사를 하는데 시간이 되면 와서 구경하고 기사로 좀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모심기를 하는 대구경북 겨레하나 회원들. 다들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표정은 밝다.


시민기자의 통일쌀 모심기 취재 출장



햇빛이 따가운 봄의 끝날. 선크림과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행사장으로 갔다. 명색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타이틀로 가는데 취재수첩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예전에 받았던 오마이뉴스 로고가 선명한 수첩을 가방 안에 넣었다. 명함도 챙겼다. 첫 출장 취재라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2023년 대구경북 겨레하나 통일쌀 모심기". 통일, 겨레라는 다소 불순하고 불그스름한 명칭의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날씨는 참 좋다. 취재요청을 한 형님을 찾아서 이쪽저쪽 둘러보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이 여럿 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떨어진 전직 시의원님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직접 취재도 나와주시고,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재밌게 놀다가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가겠습니다."



겨레하나라는 단체는 어떤 일을 하냐면 



"겨레하나라는 단체는 2004년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평화통일 시민단체입니다. 서울, 인천, 파주, 대전충남, 전북, 광주전남, 대구경북, 경남, 울산, 부산 등 10개 지역과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등 사업본부,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와 강제징용 사죄 배상 특별위원회 등을 두고 있죠. 작년에도 경주 동학 여행, 북한 어린이 도서전시회, 제주 4.3평화기행 등 여러 행사를 개최해 오며 시민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통일 운동을 지향하는 단체입니다."



대구경북 겨레하나 김종국 상임대표는 모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 통일 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평화, 통일, 북한이라는 말만 해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이곳 대구경북에서 통일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이 논에서 나는 수확량의 절반은 북한에 농자재나 농기계로 보내는 계획입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남북 관계가 풀리면 지원하려고 하나하나 적립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하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죠. 그래도 뭐 이제는 뭐 면역이 되어서 그런 말을 잘 신경 안 쓰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 한민족이 서로 돕고 함께 살자는 것이 손가락질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즐겁고 의미 있게 꾸준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행사 '대구경북 겨레하나 통일쌀 모심기' 행사를 준비한 이영수 영천지회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영수 대표는 모심기 행사를 위해 논을 내놓았다. 논만 준비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4월부터 논에 심을 모을 준비 했고, 어제는 하루 종일 경운기로 논을 갈았다. 오는 7월 8일에 있을 영천지회 창립총회를 앞두고 바람몰이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위해 본인 농사는 지금 관심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도 열심히 모심기를 한다. 세 마지기 600평의 논에 30명이 달려드니 금방 끝이 난다.


모심기로 통일 운동을 한다고?



오전 10시다.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심기 행사에 왔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도시 사람이다. 어린아이도 있고, 대학생도 있고, 아저씨 아줌마도 있다.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왔지만 처음 진흙탕 논을 밟아보는 것이어서 행동이 엉거주춤이다. 요즘은 다들 콤바인이나 이앙기로 모심기를 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직접 사람들이 못줄을 넘겨가며 직접 모를 심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 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우리 민족 우리네 땅 평양만 왜 못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에라도 신명 나게 달려볼란다"



논두렁 바깥에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평양'이라는 단어가 뭔가 어색하다. 그렇다. 여긴 경상도 땅이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정도 어색함은 함께하는 연대의식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일이다.


처음 모심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작업 속도는 더디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심은 모가 물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못줄 직선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한 어린아이의 모는 삐뚤빼뚤이다. 1시간가량 허리를 숙이고 노동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새참 안 줍니꺼? 배고파가 모가 안 심겨집니더."


"아이고, 1시간 일해놓고 무신 새참 타령인교?"



말은 그렇게 해도 벌써 논두렁 느티나무 아래에는 새참으로 준비된 잔치국수가 2열 종대로 줄을 서있다. 새참을 먹고 1시간 정도 더 모를 심고 나니 세 마지기 600평 논에 어린 모가 가득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니 큰 힘들이지 않고 일을 끝냈다. 물론 기계로 하면 훨씬 더 빨리 끝냈겠지만…



농사일에 새참이 빠지면 그건 농사일이 아니다. 맛있는 잔치국수와 돼지수육과 막걸리는 새참의 정석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심기도 통일 운동이다



일을 끝내고 먹는 점심 식사 겸 뒤풀이 시간이다. 어쩌면 다들 이 시간 때문에 오늘 여기 온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랬다. 막걸리와 돼지수육을 앞에 놓고 다들 앉았다.



"비록 이 모를 심어서 수확을 하더라도 당장 북녘땅에 보낼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북한 동포들도 같은 시간에 참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모심기를 할 것 아닙니까? 공포의 정치, 자본의 논리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통일 감수성을 유지하고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작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은 없었고, 평화와 번영은 전쟁위기가 심화되고 남북한 모두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과 통일 모심기 행사는 뭔가 딴 나라 이야기같이 들릴지 모른다.



"그래도 해야지예, 제가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 하신 말씀 있지 않습니까?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라고 캐도 자꾸 해봐야지예. 언젠가는 남북이 통일이 될 거 아닙니까? 이렇게 30명이 모여서 하는 모심기 행사로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자꾸 하다 보면 분명 달라질 겁니다. 하모예."



행사를 끝내고 각자 소원을 적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행사를 하는데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김효섭 회원님의 메모가 눈에 띈다.



"영천역에서 손님 모시고 평양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윤석열 정부 남북 관계에서 당장 오늘 심은 모가 쌀이 되어 북한 주민에게 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계속해야 한다. 통일운동은 별게 아니다. 이렇게 뭐라도 자꾸 하다 보면 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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