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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an 14. 2019

이국종이 말하는 시스템,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어렵나?

<골든아워> 서평

“교수님, 남해에서 배가 침몰해 들어간답니다. 안산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는데 배고 침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쉼 없이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렸다. 더 읽으면 다시 가슴이 답답할 것 같았다. 또 세월호다. 아니 다시 세월호다. 아직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답답한 응어리로 남아있다.


이국종은 의사이다. 그 스스로 직장인이라고 하면서 밥벌이를 위해 의사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 중중외상센터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고 어쩔 수 없이 생명의 마지막을 지켜보기도 한다. 책에도 나오고 각종 매체에 나와서 그는 외친다. 시스템, 프로토콜, 매뉴얼…



이국종의 <칼의 노래>


이국종이 스스로 밝혔듯 이 책은 이국종의 <칼의 노래>이다. 그 스스로 작가 김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순신은 항상 외로웠다. 이순신은 사방이 적이라고 했다. 눈앞에 시커멓게 일렁이는 파도 건너편에는 왜놈들이 적이며, 전쟁보다는 정쟁에 눈이 먼 고관대작들도 적이었다. 왕의 권위만 걱정하는 임금도 적은 아니지만 우군은 아니었다. 조선을 돕기 위한 출정이 아닌 자기 나라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전공을 가로채기 위해 나선 명나라도 결코 우군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는 그를 따르는 부하들과 백성들이 있었다. 그 부하들과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전쟁에서 승리하여야만 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자기 다리를 주물러준 노비의 이름과 하급 군사의 이름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순신에게 있어 임금도 자기 부하도 노비도 모두 같은 백성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다. 소설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 그는 전쟁에서 이겨서 백성들을 구했고, 전쟁이 끝나면 또다시 백성들의 삶과는 무관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임을 알았기에 죽음을 택했다. 왜놈과의 전쟁에서는 백전백승할 의지와 힘이 있었지만 그다음 전쟁 아닌 전쟁에서는 이길 자신이 없었나 보다. 이순신은 백성들만의 영웅으로 남고 싶었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국종의 모습은 항상 차갑고 습하다. 그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외로움과 답답함이 느껴져 때로는 책을 덮고 큰 숨 한번 내쉬어 본다. 병원 내부의 지원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의사 집단의 시기심도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경직성과 무사안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생명을 살리려는 헬기 출동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의 희박해져 가는 공동체 정신도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이국종은 동료 의사들과 묵묵히 함께하는 스태프와 극소수의 공직자들의 힘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가 습관처럼 내뱉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들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처럼 이국종에게도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 표지에 이름을 새길만큼 믿고 의지하는 정경원, 묵묵히 자기의 아픔을 숨긴 채 근무하는 동료 의사와 스태프들, 그리고 가끔은 이국종의 마음을 이해하는 극소수의 공직자들. 이순신이 하급 군사와 노비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국종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알려 노력한다. 그가 어떤 방송에 나와 직원들의 사진과 소개를 빼곡하게 적은 작은 수첩을 수줍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책 2권의 절반 가까이는 함께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소개를 적어두었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건 승리가 아니라 백성들의 희생과 피 흘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왕은 도망을 갔고 컨트롤 타워인 궁궐은 불탔다. 조선 조정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할 시스템이 없었고 의지도 없었다. 7년의 전쟁에서 이순신과 몇몇 장수, 수많은 백성들이 나라를 구했다는 것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또 세월호? 이국종에게는 매일매일이 세월호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침몰 순간을 제외하고 그 어떤 구조활동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배 안에는 선장이 도망쳤고 선내 방송은 “가만히 있으라”였다.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수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정부가 했던 일이라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사고 해역 가까이 있던 미군의 지원도 거부했고, 민간의 구조도 통제했다. 그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국종은 뉴스 인터뷰에 나와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 가까이 되었지만 “매일매일이 세월호가 터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 당시 사고 해역에서 날고 있었다. 이국종은 말했다.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이날(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반에 (침몰 현장)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배 보이세요? (세월호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메인 구조헬기들은 다 앉아 있잖아요. 왜 앉아 있을까요? 거기 있던 헬기들이 5천억 원어치가 넘어요. 저만 비행하고 있잖아요. 저는 말 안 들으니까”


정권이 바뀌었고 세월호는 침몰 해역에서 떠올랐지만 아직 진실은 모른다. 시스템은 아직 그대로다. 영웅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국종이 습관처럼 내뱉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시스템”은 왜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힘든 것인가? 지금 바라는 것은 이국종 같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버텨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골든아워 1,2> 이국종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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