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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Feb 06. 2024

한동훈의 ‘스타벅스’와 배달노동자의 ‘레쓰비’

'서민(庶民)’이라는 말이 주는 그 씁쓸함에 대하여

'서민’이라는 단어가 궁금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서민(庶民)’이라는 단어는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민의 의미는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의 유무보다는 경제적 부의 많고 적음에 따른 계층적 의미가 더 클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서민의 기준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세청은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을 지원하는 기준으로 4인 가구 기준 연 소득 4천만 원을 제시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03만 3000원이라고 하며 이 기준에 따라 상류층과 중산층 서민의 기준을 대략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소득 인정액, 부양의무자 등의 기준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해서 지원하기도 합니다. 정부 부처마다 정책 목적에 따라 서민의 기준을 달리 적용하여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민(庶民)’의 어원


정치인들이 선거때만 들고나오는 '서민'이란 말은 어원을 알고 분석해 보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庶’는 적서(嫡庶) 관계에서 첩의 자식을 뜻하는 글자이고, ‘집 엄广’, ‘스물 입卄’, ‘불 화灬’가 합쳐진 글자로, 미개한 사람들이 불을 때며 모여 사는 모습을 가리키는 뜻의 상형문자라고 합니다. 백성'민(民)'자 역시 고대 중국에서 노예들의 도망을 막기 위해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 뜻에서 나온 상형문자라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예로부터 '인'은 군주가 '아끼는 사람'이고 '민'은 '부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은 지배자이자 교육받은 자였고, '민'은 피지배자이자 못 배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부를 때 ‘인’을 붙이는 직업은 정치인, 경제인, 군인, 문화예술인, 법조인, 언론인 등이 있지만 ‘민’이 들어간 직업은 농민, 어민 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民)’이란 단어 자체에 무시와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민(庶民)’이라는 단어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권력도 없는 국민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국민들을 지배하면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서민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정부나 정치인들은 서민이란 말을 참 사랑해 왔습니다. 특히 선거때가 되면 언제나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해 왔습니다. 서민들은 선거 때가 되면 잠시 특권층, 부유층, 지도층과 같은 국민의 위치에 섰다가 선거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서민의 위치로 떨어집니다. 

 

한동훈은 스타벅스 매장이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동훈이라는 사람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고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공군 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검사로 발령을 받아 재직 시절 요직을 두루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2022년 5월 17일부터 2023년 12월 21일까지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승승장구를 하며 역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법무부장관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3년 12월 21일 한동훈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며 장관직 사퇴 후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인으로서 새 출발을 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습니다. 한동훈은 평생을 ‘서민(庶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 스타벅스는 사실 업계의 강자잖아요. 굉장히. 여기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5일 정치인의 필수 방문 코스인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서울 경동시장 내 위치한 스타벅스를 방문해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대기업과 재래시장과의 상생협약을 소개하며 "스타벅스 매장이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동훈은 스타벅스를 서민들이 오는 곳이 아닌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스타벅스가 서민들이 자주 가는 재래시장에 매장을 내고 상생협약을 맺어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음료 한 잔, 모든 아이템당 300원을 경동시장 상인회에 제공하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겠지요. 마치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서민들을 보호하고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요. 스타벅스와 스타벅스에 오는 사람들을 한동훈 본인과 동일시하고 경동시장과 경동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자기와는 다른 사람, 즉 ‘서민(庶民)’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워낙 언론에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소송하고 겁을 주는 분이라 무서워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5천 원짜리 스타벅스를 마시면 부유층이거나 최소한 중산층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진짜 행복합니다. 진짜로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서민에 불과한 저 같은 사람이 가끔 스타벅스에 가서 서민을 벗어나는 체험을 해볼 수 있으니까요. 제 스마트폰에는 친구가 생일이라고 선물한 부유층 체험 티켓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 음료 쿠폰 2장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또한 서민을 벗어나기 위해 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통신사 VIP 고객이 되어 2달에 한 번 스타벅스 쿠폰을 받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제가 스타벅스에 가서 부린 허세를 반성하는 의미로 남은 쿠폰들을 모두 한동훈 같은 서민 등급이 아닌 분들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배달노동자 추모공간에 있는 “레쓰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만취 상태로 벤츠를 운전하다 사망 사고를 내고도 구호 조치 대신 강아지만 끌어안고 있던 20대 여성 운전자의 뉴스로 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는 50대 남성으로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빈소조차 마련되지 않는 그 배달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그곳에는 동료 기사들이 만든 추모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추모공간에는 사고 당시 썼던 헬멧과 그 옆으로 소주, 캔커피 등이 놓여있습니다. 


강아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배달노동자, 서민들이 분명한 그 배달노동자들이 추모공간에 두고 간 1000원도 안되는 레쓰비 캔커피, 스타벅스 커피, 한동훈, 벤츠… 과연 우리에게 ‘서민(庶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배달기사의 추모공간에 놓인 헬멧과 캔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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