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다 자의든 타의든 그만 두게 되면 여성에게는 ‘경단녀’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일과 단절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특히 육아를 혼자 책임져야하는 여성에게 있어서 경력단절은 예견된 이력이 될 수밖에 없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닌 첫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낳으면서 8년을 근속한 직장을 떠나야 했다.
요즘은 직장 내 어린이집도 있고 육아휴직이 최소 1년 이상이 주어지며 남편에게도 동시에 육아휴직이 생기는 등 당시로서는 꿈만 같던 복지조건이 현실화 되었다. 그런 조건이었다면 지금도 사내명찰을 목에 두르고, 입구에서 출근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선택은 아이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다른 직장 선후배들은 승진도 하고 더 발전된 삶을 살아갈 텐데, 결혼을 해서 함께 아이를 낳았지만 왜 나만 육아를 위해서 집에 머물러야하는가에 대한 반문이 계속 들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처럼 사회가 여성에게 주는 불리한 조건에 화가 났다. 세상에서 갑자기 소외된 것 같고 나의 미래는 막막하기만 했다. 엄마로서의 삶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쌓아놓은 경력이 이제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피할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상황에서 내가 찾아야 할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다 첫째 엄마로서 아이를 잘 키우고 둘째 육아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내 모습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어공부다. 아이의 영어 길잡이가 되어주고 나의 경력을 살리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영어에 집중하는 것은 동시에 육아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거창한 공부방법이 아니라 영어동화책 읽어주기, 영어동요와 챈트로 춤추기, 영어비디오 함께 시청하기, 간단한 영어문장을 반복해주기, 모든 사물에 영어로 이름 붙여주기 등 일상에서 놀이를 반복하며 아이와 영어로 놀아주는 일이었다. 엄마의 영어실력과 상관없이 가능한 한 영어환경에 아이를 많이 노출시켜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아이를 위해서 영어독서지도사를 1년간 공부했고 배운 그대로 아이에게 접목시켰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영어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고 나의 놀이방식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것임을 내 아이를 지도하며 알았다. 영어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덕분에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스토리텔링 강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를 얻었고 퇴사 후 처음 월급을 맛보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학습지 교사로 활동했고 영어교사로서 꿈을 키워갈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경력 단절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일종의 포기선언과 같다.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안에 무한한 잠재성이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항상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가족을 우선적으로 챙겨야하기에 나를 사랑하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회의 여성이다. 그렇다고 아이와 남편에게 소홀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지 않는가.
직장생활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킹 맘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경력단절은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